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호 Mar 12. 2018

은밀하게 상사를 엿 먹이는 방법

오죽하면 이런 궁리까지 했겠냐마는...

사회 초년생 시절, 어쩌다 월차를 쓰려고 하면 팀장은 으레 무슨 일이 있냐고 따져 물었다. 순수한 관심의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달갑지 않은 질문이었다. 사실 월차를 내는데 매번 무슨 이유가 있겠나. 겉으로는 치과나 은행 핑계를 댔지만, 내뱉지 못했던 솔직한 심정은 '하루라도 니 얼굴 좀 안 보고 싶어서요'였다.


직장 생활은 어떤 상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천지차이로 달라진다. 일이 힘든 건 어지간하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상사와의 갈등은 정말 견디기 어렵고 이직한다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그런 상사는 대부분 직장에서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이 통하고 의지할 수 있는 상사와 일하고 있다면 자다가도 감사할 일이다.

직장만 아니면 절대 상대하지 않을 인간에게 시달리던 시절, 속으로 그 인간을 엿 먹이는 방법을 궁리하곤 했다. 실행은 못해도 상상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위장병을 유발하는 상사를 모시고 있는 직장인들과 내가 찾은 은밀하게 상사를 엿 먹이는 세 가지 방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1. 상사가 '시키는 대로' 하기

일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씩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 자주 있는 기회는 아니지만, 상사도 그럴 때가 있다. 그런 지시를 말 그대로 '시키는 대로' 하는 거다. 일이 잘못되어당신은 지시받은 대로 한 일이기 때문에 책임이 거의 없다. 대신, 당신의 상사가 더 높은 상사에게 불려 가서 '깨지는' 상황을 표정 관리하며 즐기면 된다.


대부분 간단한 문책으로 끝나겠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잘못된 지시에 대한 책임으로 자리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 혹시 예상외로 일이 잘 풀린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다. 상사가 당하는 꼴을 못 봐서 아쉽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만큼 이 방법은 안전하고 효과적이다.


다만 한 가지 주의점이 있다. 지시를 받을 때 '이러저러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 괜찮을까요?'라고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문제점을 살짝 경고해 둬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때 당신의 책임을 완전히 면할 수 있다. '그런 문제를 왜 예상 못했냐'는 상사의 질책에 '제가 미리 말씀드렸잖아요'라고 방어할 수 있는 거다. 또는 당신의 업무 역량을 시험해 보려는 지시였다 해도 그 함정을 피해갈 수 있다.


행여 당신의 경고를 듣고 상사가 맘을 고쳐 먹을까 걱정하지 마시라. 부하 직원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상사라면 당신이 엿 먹이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을 거다.


2. 최선을 다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기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은 '욕먹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한다'는 말과 비슷하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처신하다가는 상사를 엿 먹이기 전에 당신이 '형편없는 사람'으로 찍힐 수 있다. 벼룩 잡다가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다. 그렇게 티 나게 개기라는 반항하라는 뜻이 아니다. 당신의 반항을 눈치채지 못하게 '최선을 다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의 상사가 '책상에 붙어 있는 시간'을 성실함의 척도로 여긴다면 그렇게 맞춰주면 된다. 상사가 퇴근한 후 퇴근하고, 필요하면 주말에 출근하는 모습도 보여주는 거다. 격식을 중시하면 격식을, 매너를 중시하면 매너를. 근데 딱 거기까지다. 이 정도도 쉽지 않겠지만, 상사가 딱히 흠잡지 못하는 수준까지만 협조하고 그 이상의 노력은 기울이지 않는 거다.


이 방법이 성공하면, 상사에게 '저조한 성과'라는 '빅엿'을 안겨줄 수 있다. 더 나아가, 당신의 동료들도 이에 동참한다면 조직의 실적은 엉망이 될 것이고 당신의 상사는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성공은 부하 직원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달려 있다. 수동적인 지시 이행만으로는 기대하는 성과를 낼 수 없다. 당신이 엿 먹이고 싶은 정도의 상사라면 이 점을 놓치고 있을 거다. 강압적으로 부하 직원을 쥐어짜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그 상사의 미래도 한계를 맞는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당신은 평판을 유지하면서 상사는 물러나게 된다.  


3. 업무 역량으로 상사를 뛰어넘기

상사를 뛰어넘는 업무 역량을 키우는 것으로 가장 바람직한 전략이다. 그런다고 상사와 지위가 역전되기는 어렵겠지만, 당당한 직장 생활이 가능해진다. 적어도 상사가 당신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정도만 가능해도 당신을 힘들 게 한 상사에 향한 멋진 복수다. 더 나아가 그 상사를 버리고 다른 조직으로 옮길 수도 있다. 뛰어난 역량을 갖춘 당신을 어디서든 환영할 것이다.


예전에는 업무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상사가 더 많이 알고 일도 잘했다. 경험이 최고 무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바뀐 지 오래다. 어학, IT 활용, 정보 검색 같은 역량은 오히려 젊은 세대가 더 뛰어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부장이 신입사원에게 묻고 배우는 상황도 드물지 않다.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도전한다면 상사보다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아주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 방법의 달성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경험이 쌓인 상사를 따라잡는 게 쉬울 리 없다. 여러 면에서 상사를 뛰어넘는 게 어렵다면 한 분야에 집중하는 것도 좋다. 한 분야라도 능통한 사람으로 평가받게 되면 상사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


상사에게 당한 것을 생각하면 더 강한 '빅엿'을 날려주고 싶겠지만, 본인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자기가 도달했던 최고 지위에서 내려온 후 진정한 평가를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노력과 상관없이, 시간이 흐르면 진짜 엿 먹어야 할 상사는 그렇게 된다. 당신의 상사가 정말 나쁜 인간이었다면 진짜 평가는 그때부터다. 그러니 너무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