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기자 선배들이 직업 특강을 온 적이 있다. 전공은 상관이 없었지만 언론에 관심이 있던 터라 특강에 참여했다.
질의응답 중 한 학생이 물었다.
개인적, 종교적인 이유로 음주를 하지 못할 경우, 기자 생활에 방해가 되나요?
선배는 답했다.
개인적인 신념으로 마시지 않는다면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술'이 좋은 매개체이자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고.
필자가 고용인으로 경험한 언론사는 한 곳뿐이기에 일반화를 하기는 어려우나, 언론사 자체가 '술'과 친한 조직임은 틀림없다.
취재원, 취재처와의 끈끈한 유대관계 형성을 위해 점심 미팅부터 술을 한잔 곁들이기도 하고,
조직 내의 끈끈함을 위한 회식이 잦기도 하고.
20대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었던 필자의 첫 회식 기억은 참으로 시트콤 같았다.
'티코 소맥 파도타기' '충성주' '사발식' '자정의 119'
키워드 하나하나 정말 주옥 같다.
첫 직장의 회식 철칙은 명확했다. 사주인 대표님은 6시 정각 회식에 참여해 8시 정각 집에 간다. 윗 사람은 빠져줘야 한다는 '좋은 명분' 하에 2시간 안에 컴팩트하게 술을 마시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필자는 술을 즐기는 편이지만 당시만 해도 20대 사회 초년생이었기에 '티코 소맥'은 또 처음일세.
맥주잔 4잔을 모은다.
소주잔 한잔에 소주를 꽉 채운다. 4개의 맥주잔에 4분의 1씩 따른다.
그 높이의 1.5 높이만큼 맥주를 따른다.
이른바 '티코 소맥' '한입 소맥'
그리고 2시간 동안 한입 소맥을 달린다.
세상에 이런 연달은 파도타기는 정말 처음이다.
대학시절 술자리에서도 파도타기는 가끔 해봤지만 2시간 내내 파도타기라니 그나마 그당시 간이 젊어서 버텼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키워드 '충성주'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충성주를 첫 직장생활 첫 환영회식에서 보게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늘어놓은 맥주잔 그위에 사이사이 올려진 소주잔
그리고 테이블에 고개를 쾅 박으며 대표님 사랑합니다를 외치는 부장님
그때 알았어야 했다. 음? 영화에서 보던건데? 라고 멍때릴 게 아니라
세 번째 키워드 '사발식'
전통적으로 어떤 대학은 입학 후 신입생 환영회에서 포대자루를 밑에 대고 신발 담갔던 사발로 술을 먹인다느니 그러다 다 토한다느니 (아마 요즘 20대 친구들은 상상도 못할 지도 모른다) 하던 구전이 전해져 오긴 했지만, 실제로 그런 사발식을 경험했다는 친구는 주변에서 못봤다.
해봐야 소주한병 원샷 정도? 그것도 공대 친구들 정도.
이미 2시간 파도타기를 한 후 동기들의 의리를 보겠다며 어디선가 나타난 빈 냉면 그릇
음? 저 냉면그릇의 정체는 뭐지? 동기들의 의리? 출근한 지 일주일도 안됐는데?
정도의 생각은 들었지만 사실 이미 정상적인 사고는 불가한 상태 ㅎㅎㅎㅎ
콸콸콸콸 부어지는 소주 1병, 2병, 3병째쯤 따른 후 맥주병으로 냉면 사발은 저어졌다. 그래서 소맥이라고
음...? 맥주는 몇방울 들어간거지?
사회 초년생이니까 여긴 원래 이게 문화인가?
하지만 현실의 필자는 단 한마디 찍소리도 못했다.
나란히 선 동기 나포함 다섯. 이제 사발을 나눠 마시란다. 그래 뭐 죽기야 하겠냐 하는 마음으로 마셨다.
사발식 그 이후... 동기 둘은 누군가에 의해 실려갔다 ^^
지금 같으면 아마도 괴롭힘 방지법 위반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이지만 가장 강렬했던 '자정의 119'
파도타기 충성주 사발식 이후에도 회식은 이어졌고 2차 호프집, 그리고 마지막 3차 대망의 노래방이 다가왔다.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는 회사 회식에서 노래방에 대한 거부감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가면 가는거지 뭐 재롱잔치는 안하겠지만.
하지만 1,2차에 많이 마신 덕분에 들어서자마자 들른 화장실. 이제 나가려는데, '음? 문이 안열리네?'
팀원들에게 상사들에게 모두 전화했지만, 3차 장소는 노래방. 전화 소리가 들릴 리 없다.
취한 와중에도 '내가 취해서 못여나?'하고 거듭 시도했지만 결론은 문고장...
다행히 화장실 바로앞이 카운터여서 노래방 사장님께 도움을 요청했는데...
사장님 왈 '어? 이거 왜이래? 열쇠...로도 안열리네..?'
뭐어라아구우요? 세상에...
때는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 열쇠 사장님들은 당연히 이미 퇴근한 터라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던 사장님 왈
'어우 다 전화를 안받네에- 119밖에 없겠어어'
네에? 119요? 이런 일에 그런 공적 서비스를 불러도 되나요...? 물론 저는 매우 위급 상황입니다만...
설상가상 화장실 불도 꺼져버렸다
당시 취한 기운에 '하핫 내인생 시트콤인가?뭐지?'
하고 앉아서 포기하고 쉬었다.
그런데 갑자기 똑똑-하면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 안에 계신분, 괜찮으세요? 119 불러서 이제 금방 온대요'
'아 네 괜찮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혹시 어디서 오셨어요?' '네?'
'아 어느 회사에서 오셨나 하구요' '네? 아 0000인데요'
언론사들이 옹기종기 요기조기 모여있는 동네였기에 갑자기 기사도 정신이 발동된 어떤 분께서 안에 갇힌 사람이 무서울까봐 말을 걸어주신 거였다.
그걸로도 감사했는데...
0000 회사명을 말하는 순간,
'어? 저도 거기 다니는데 이름이 뭐에요?'
'아? 어... 저 지난주 입사한 000입니다'
'아 저는 00팀에 000이에요'
이어지는 대화에 음 정말 내인생은 시트콤이군
그로부터도 119가 올때까지 그 앞에서 계속 말을 걸어주던 분...
실명을 밝힐 수 없지만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선배님!
(하지만 퇴사하는 날까지 눈 한 번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퇴사하는 날 감사의 인사를 전했더랬지...)
그리고 마주한 119 대원님들...
그때 한 3분이 오셨는데 정말 죄송하...고 세금을 팡팡 낭비한 기분이 들었더랬다...
우여곡절 끝에 팀이 있는 방으로 1시간여만에 돌아가니
'뭐야? 너 집에 안갔어? 도망간 줄 알았더니?'
'저 화장실에 갇혀있다 왔는데요'
'아 그 골뱅이가 너였어?'
'저 이제 술 다 깼는데요... 그냥 화장실 문이 고장나서 119가 열어주고 갔어요'
'아 그래? 고생했다 이제 집에 가자' '네...'
1N년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도 너무나 생생히 기억에 남았던 첫 회식의 아찔한 추억이다.
이후에도 이어지는 회식속에 어떻게 살아 남았는 지는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