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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고도 싫은, 싫고도 좋은

by 기나


아이들과 전주에 다녀왔다. 여행은 과정이므로 집에서 출발하면서부터 우리가 마주하는 즐거움, 재미, 갈등과 불편 모두 경험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편이다. 즐거움으로 가득차기를, 짜증나는 일 한번 없이 모든 것이 순조롭기를 바라기보다 좋은 것은 좋은 일로, 불편한 일은 불편한 일로 받아들이고 잘 겪어내는 것이 에미인 나의 목표였다. 아이들과 같이 움직이는 건 정말 좋고도 싫다. 싫고도 좋은가? 하긴 그렇게 따지면 모든 일이 그렇지. 좋기만도, 싫기만도 한 건 없지.


전주는 세가지 옵션 중 하나였다. 유월에 가보고 싶은 행사가 세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전주 책쾌, 또 하나는 무주산골영화제, 마지막 하나는 서울국제도서전으로 세 목적지중 가장 아이들이 소화하기 좋을 만한 곳으로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었다. 무주는 지리적 접근성이 너무 안좋고, 국제도서전은 나도 대충 훑는 데다가 아이들이 정말 재미없어할 것 같았다. 전주도 쉽지 않았지만 대개의 여행이 그렇듯, 지나고보니 좋았다.


전주에 가기로 결정하고 아이들한테 조사를 해서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들을 조금 정리해두라고 했다. 에미 애비 따라서만 다녀버릇한 아이들은 잘해내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도 완벽하게 준비하는 스타일은 아닌데다가 기동성이 낮아서 두루 다니기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 바가 있었다. 다음에 남편도 동행할 때 차를 렌트해서 내가 운전해보는 것으로 육지에서의 운전이 가능한지 가늠해보기로 하고, 이번에는 정말 택시만 주구장창 타고 다녔다. 시간도 많아서 조금만 부지런 떨면 버스도 타고, 걷기도 해볼텐데 결정적으로 부지런하지 못했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나였다. 대체로 시큰둥한 큰 아이 눈치를 보기 시작한 나와, 에미 기분 상하지 않는 방향으로 눈치껏 행동하는 그 시큰둥한 아이, 뭐라도 하지 않으면 심심하다는 말로 에미 정신력을 테스트하는 작은 아이가 일행이었다. 서로 잘 참으면서, 좋은 파트너가 되도록 노력하자는 출발전의 약속을 나름 지키려고 한 것 같다. 아이들이 가장 신이 났던 순간에 짜증이 터져버린 나만 빼고. 아이들은 내내 재미없다가 팔복예술공장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재미있었다. 나는 내내 좋게 말하다가 거기서 큰아이의 행동이 못마땅함을 감추지 않았다.


불편한 거, 못마땅한 거, 아픈 거, 짜증나는 거, 화나는 거 감추지 못하/않는 나.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가 좋은 것은 좋은 일로, 불편한 일은 불편한 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잘 겪어내지 못했다. 그때 상황을 생각해보면 우리 아이들보다 한참 어린 아이들이 놀고 있는 장소였는데 우리 아이 수형이가 조심성없이 신발 모래를 털었고, 아이들이 노는 고인물에서 발에 묻은 모래를 씻어내서, 젖은 발로 다시 신발을 신었다. 작은 아이 지동이는 젖은 바닥에 그대로 엉덩이를 대고 앉아 신발 뒤처리를 하기도 했다. 내가 바라는 나는 ‘그럼 어때‘ 하는 나다. 아이들이 가장 신날 때 같이 신나고, 불편하고 짜증날때 그 불쾌함을 덜어주는 웃음을 주는 나다. 한바탕 야단을 치고 그 길로 다시 택시를 불러 전동성당 순례자미사에 참례해, 기도 중에 내가 그러고 싶은 걸 알았다. 수형이 손을 잡고 손바닥에 ‘미안해’라고 썼다. 사과를 미루기 싫었다.


이번 여행은 그걸 남겼다. 담달엔 부산으로 간다. 거기서는 뭐가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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