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더 나을까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드라마 <폭싹 속아수다>가 세간의 난리지만 나는 요 며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정주행 했다. 물론 '폭싹'도 보고는 있다. 오애순의 사랑스러움과 그의 무쇠에게, 볼 때마다 감명받는다. 하지만 그 이상 다른 하고 싶은 말이 없다. '브람스'는 어제 정주행을 마치고 근질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우선, 나는 왜 2020년에 방영된 이 아름다운 드라마를 놓치고 있었던가. 이렇게 들끓을 것을 알고, 한껏 들끓어도 좋을 만큼 한가한 이때 나에게 온 것인가? 바이올린이 좋아서 취미로 붙잡고 있다가 결국 삼수, 사수 끝에 음대에 다시 들어가고야 만 송아가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보이는 태도(마음 말고 행동)는, 나쁜 사람 말고 나쁜 줄 알면서도 순응하는 송아를 째려보게 만들었다. 잘못된 건 바꿔야 되는데 저러고 있으니 못된 관행의 뿌리가 뽑히지 않는 거라고 한심하게 바라봤다.
그러다 간절해본 적 없는 나라는 사람이 가질 법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한 번도 답이나 길을 정해두고 살지 않았던 것 같다. 원하는 것이 없었는가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항상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이 있었다. 글(책 말고)을 쓰고 싶었던 때도 잠시 있었고, 사서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했고. 그런데 나는 내가 왜 글을 쓰고 싶고 사서가 되고 싶은지를 항상 생각했던 것 같다. 글이나 사서는 그냥 '왜'를 충족시킬 수 있는 매개였지 목적 그 자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갈등이 일어날 법한 상황을 반드시 시끄럽게 해 결할 필요가 있나, 교수의 뒷바라지를 그만하기로 결심한 송아의 행동은 또 나의 문제 해결방식을 돌아보게 했다.
송아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꾸 준영의 목소리가 어른거린다. 그는 누구인가. 배역을 너무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드는데 (방금 검색해 보니 어제 전역했단다.) 집안의 말썽꾼(죄송합니다. 나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말썽꾼들)이 저지른 말썽을 메우기 위해 피아노를 쳐야 하는 슬픈 영혼. 그의 영혼도 처음부터 슬프지는 않았을 텐데 슬퍼져버린! 나는 준영 송아와 아 관계를 지키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들을 명확하게 사용했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이별을 '선고'받았다. 연애가 괴로울 때는 응당 이별을 상상하고 계획하게 되지. 나 같은 사람은 참지 않지. 그런데 송아는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인 줄 알았건만 나 못지않게 빠르게 자신을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 송아가 준영에게 기대고 싶었던 만큼 준영도 송아의 존재에 많이 의지하고 있었는데 그걸 몰라준다는 서운함이 몰려왔다.
이별 후 준영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졌다'라고 말했다. 내가 그렇듯 송아는 이별 후 '모든 것이 가능'해진 것처럼 보였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게 된 것과 모든 것이 가능해진 것. 후자는 내가 잘 아는 기분인데 전자는 낯설고, 어렵다.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그립고, 눈물 난다. 모든 것이 가능할 것만 같은 해방감을 좋아하지만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게 된 만큼 지키고 싶은 것(연애)이 욕심이 난다.
나는 끝났다. 암울하거나 불행하지 않다. 나에겐 관전할 수 있는 아들이 있다. 아들이 딱 두 번만 사랑을 하고 결혼했으면 좋겠다. 계산하지 않고 자신을 가장 자신이게 놔두는 사람, 함께 할 때 편안한 사람을 너무 빨리도, 너무 늦게도 말고 딱 두 번 연애하고 알아봤으면 좋겠네.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