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뜨개 얘기를 하게 됐다. 견진성사/사순 특강이 이제 담주면 끝나는데 오늘은 본당 신부님의 양심성찰에 관한 내용이었다. 특강을 쭉 듣다보니 어느 대목에선가 내가 너무 즐거움만 추구하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선택을 포기하거나 외면한 데 대해서는 괴롭지만 뜨개를 선택한 결과물을 보며 쾌감을 느끼고, 프랑스자수 스티치 연습 해놓은 걸 보면서 이래도 된다면 정말 그러고 살고 싶다는 유혹을 느낀다.
아이들은 학교 다녀오면 해야할 일을 먼저 해놓는다. 그런 패턴을 몸에 익히도록 연습하는 단계지만 제법 잘하고 있다. 즐거움을 유예시키고 싫은 일 먼저 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었다. 단순하고 간단한 행위지만 그래서 더 지키기 어려운데 아이들이 잘 해주고 있어서 보호자인 내가 얼마나 마음이 좋은지 모른다. 그런데 아이들이 보호자여, 너는 어쩌고 있는 거야. 너도 보호자가 필요한가? 보호자가 있으면 말은 들을 것인가?
아니, 모두 아니다.
청소도 하고 빨래도 개키고, 주방 정리도 하고 식사 준비도 하고, 운동도 하고, 뜨개와 자수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나는 내가 굉장히 치우쳐 있는 것 같다. 안정과 쾌락에. 걱정이나 조금 깊은 생각 또는 고민은 모두 피하고 평화와 재미에 도취된 것 같다. 퇴근한 남편과 앉아 맥주를 나눠 마시면서 우리가 꽤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을 공유한다. 사치스럽게 원하는 모든 걸 다 할수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것들에 만족하고 감사하고, 우리가 선택한 것, 우리과 관심을 갖는 일에서 만족과 평화를 느껴서다. 쓰다보니 편입대학생 시절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라'고 생각했던 무미건조한(평화로운) 날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아니, 편안해도 문제야?
아무튼 그래서 너 어쩌고 싶으냐고 물었다. 대답하기도 전에 떠오르는 건, 뜨개에서 느끼는 쾌감을 지연 또는 건너뛰고 그 시간에 할머니를 찾아가 할머니와 노닥거리는 장면, 골똘하게 매일 나에게 짐지워준 일을 해내는 장면, 미친듯이 책에 빠져있는 장면.
또 쓰다보니 알겠다. 안정과 쾌락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다른 종류(?)의 안정과 쾌락까지 갖고 싶은 것이다. 몸편한 것이 모두 쾌락이 아니고, 모든 일이 별일 없이 돌아가는 것만이 안정이 아닌 것이다. 내가 의미있게 생각하는 일들이 번거롭고 지루한 면들이 있더라도 거기서 쾌락을 느끼고 해냄으로써 안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참나, 쓰다보니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다보니 길을 만들기도 찾기도 해지네 정말. 우리집 환히 비추는 우리 아이들만 요물이 아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