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묵상
뭐라도 써야겠는데 뭐를 써야될지 몰라서 오늘 미루고 미뤄둔 온라인 성경 필사부터 했다. 필사하다보니 쓸 게 생각났다.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요한 5,42)
이크, 요한사도에게 딱 틀켰다. 나도 하느님께 사랑한다고 고백해본 적이 없다.
조금 아까 아이들이 잠들기 직전까지도 하느님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기도했지만 아, 사랑. 그건 아닌 것 같다. 한번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도, 그런 느낌을 받아보지도 못했다. 부모님을 사랑하듯이 하느님을 사랑하면 될 것 같은데 부모님을 사랑한다는 느낌을 모르겠다. 아쉬움에 맞먹는 걱정이 사랑일까.
태어나 살면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두번 가져봤다. 한번은 수형이가 태어나 자라면서 에미를 끝없이 용서하며 사랑해준 것이고, 한번은 시어머니의 관심과 돌봄으로부터 느꼈다. 사랑을 받지 않은 건 아닐텐데 내가 왜 이 두 대상으로부터 받는 것을 유독 사랑이라고 느끼는가, 며칠전 밭에서 일하다 생각해봤다. 내가 바라는 모습의 사랑이기 때문인 것 같다. 하느님으로부터도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수형이나 시어머니로부터 받는 사랑보다는 조금 거리감이 있긴 하지만 남편의 주고 있을 사랑보다는 가깝게 느껴진다.
나에게 맞춤한 사랑의 표현이나 방식이 아니라 그냥 수형이나 시어머니, 하느님 각각이 고유하게 가진 것일텐데 나와 통했을 것이다. 그럼 나, 내가 가진 내 고유의 사랑의 표현이나 방식은 뭐지? 나는 만져주는 것 같다. 머리도 쓰다듬고, 얼굴도 쓰다듬고, 손도 만지고, 안는 것도 잘한다. 할 일 없이 그러는 일은 없다. 어떤 상황에서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인 것만은 확실하다. 또 뭐가 있을까. 내일 아침에 아이들과 남편에게 물어봐야겠다. 나한테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언제 받는지.
하느님은 어떤 사랑을 원하실까? 혹시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 사랑을 드렸을까? 그게 다행히 하느님이 원하는 방식과 표현의 사랑이라 '퐁'하고 받으셨을까? 여기까지 생각하고보니 사랑 드린적이 절대 없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조금 분명하고 정확하게 사랑을 느끼고 전하고 싶은데, 아마 부모에 대한 사랑과 같거나 가장 닮았을 텐데, 부모와의 교감이 극히 적어 배우지 못한 그 사랑 갈피를 못잡겠다.
말하면 이루어지려나? 하느님 사랑합니다! (ㅇㄱㅇ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