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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만한 시간

그때도 읽었다

by 기나

산만한 시간이 지났다. '지났다'고 믿고 싶다. 다시 오겠지만 당분간은 오지 않으리라고 믿고 싶다.


작년에 많이 읽혔다고 알고 있는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빌려온 지 한참인데 현실을 외면하고 읽고 싶은 욕구만 가득차서 저지른 일이었다. 지난주에 <사랑과 결함>을 겨우 읽고 이 책을 펼칠 수 있었다. 펼치자마자 캠핑을 가게 되어 또 손을 놓았다. 산만한 시간의 절정은 그때였다. 폭풍급 바람과 비로 12일과 13일 사이에 야반도주하듯 짐을 꾸려 후퇴했다. 그 뒤처리를 하는 것까지가 산만한 시간이었고, 드디어 오늘인 것이다.


소설을 의무감에 읽는다. 인상적일 것도 없이 그냥 읽고 그냥 읽다가 한번씩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소설을 만난다. 그런점에서 입소문으로 읽은 <사랑과 결함>이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 다른 소설들과 특별히 재미있거나 의미있지는 않다. 나와 만날 시기가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김기태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서 작가의 이런 관점은 읽기 너무 좋았다.


'메이드 인 차이나'는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대륙의 저편에 있는 금형 공장과 달아오른 기계, 기름때나 묻은 러닝셔츠를 입ㅇ느 중국인 혹은 중국인이 아닌 누군가, 그가 점심으로 건져 올리는 이름 모를 하얀 국수가 떠올랐다. 젓가락을 쥔 손가락들을 상상하니 어쩐지 탓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141P.)


저 너머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좋다. 너머의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귀하다 싶으니 나는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싸잡아서 어떤 그룹을 혐오하고 기피하는 것, 차별하고 무시하는 것을 보고 듣는 게 나는 괴롭다. 역사적인 사실을 근거로 일본을 혐오하고 기피하는 태도는 일본 제품, 일본 여행 소비까지 다 제한한다. 개개인의 일본인은 죄가 없는데 '그랬던' 일본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싸잡힌다. 메이드인 차이나에 대한 불신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그러나 내가 그런 태도를 가질때, 누군가도 나에 대해 그럴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하고 그게 부당하고 비논리적이라고 느껴진다면 나로부터 싸잡혀 비난받는 누군가에게도 부당하고 비논리적인 일이라고 자각해야한다. 그게 되다면 차마 쉽지 않은 일이다.


얼마 전에 아이 학교에서 일어난 일과 담당 교사의 태도로 꽤나 분개했던 나는 시간이 지나고 부끄러웠다. 올초에 내 근무지에서 일어났던 일이 떠올랐던 것이다. 내가 취했던 태도가 그 교사가 나에게 취한 태도와 유사했다. 나는 되고 그는 안되는 것, 누군가는 마땅히 당할만 하고 나는 당하면 안되는 것은 없지 않겠는가. 행위와 현상에 가려진 사람을 알아보기. 한주를 그 일로 괴롭다가 어렵게 정리가 됐다. 그때부터 산만했던 것 같다. 길고 길었다.


그러는 중에도 읽었으니, 읽은 이야기를 빌미로 그때의 괴로움도 털어내고 좋네. 좋은거네 읽는 것과 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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