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로 구분 지어 살아온 느낌이다. 휴직하고도 그랬다. 조금 느슨해도 좋을 텐데 할 일들을 계속 만들었다. 하고 싶은 게 많은 탓/덕도 크다. 하고 싶은 일들을 해야 할 일들도 만들었다. 일과를 보면 해야 하는 일만 다해도 남는 시간이 별로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성경 온라인 필사를 하고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온다. 남편 출근, 아이들 등교 보내고 나면 집 정리를 간단히 한다. 주방을 정리하든 청소기를 돌리든, 마른빨래를 개키든. 옷을 갈아입고 운동하러 간다. 한 시간 정도 운동하고 오면 10시~10시 30분쯤 되는 것 같다. 돌아와서 씻고 나머지 집정리를 하면 점심시간이 가깝다. 점심을 먹고 책을 조금 읽고 있으면 졸다가 깼다가 하다 아이들 하교시킬 시간이 다 와가는데 수형이는 자전거 타고 등교하지 않은 날은 검도장까지 데려다주고, 검도 수련 마치면 데려오고 한다. 또 주 3일 축구하러 가는 지동이가 축구장에 가지 않는 날은 데리러 가기도 하고 가지 않기도 한다. 그냥저냥 시간이 흘러 이르면 3시, 늦으면 4시 30분쯤 집에 다시 들어와 강아지 산책을 시킨다. 다녀오면 저녁 준비.
화요일은 저녁에 뜨개 모임이 있고 얼마 전부터는 격주로 화요일 오후에 뜨개 수업도 받고 있다. 수요일 오전엔 프랑스자수 모임이 있고, 월 1회 독서모임과 , 월 1-2회 사서독서모임이 있다. 매일 성경을 쓰고 매일 글을 한편씩 쓰기로 했고, 매일 영어원서를 읽기로 했고, 중간중간 숙제처럼 책도 읽어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정해두었다. 나만 아는, 나와의 약속들이다.
휴직한 나를 바라보는 동료들이 좀 쉬라고 한다. 밥벌이를 하고 있지 않을 뿐이지 쉬고 있지 않는 게 맞다. 해야 할 일들에 포위되어 있다. 성취하면 좋고, 성취하지 못하면 이따금 열패감에 빠지고.
조만간 아이들한테도 매일 투두리스트를 만들어서 자기 전에 체크 한번 하자고 말했는데 몹쓸 습관일까, 처음으로 나의 부지런함이 의심스럽다. 한 달 전보다 나아져야 하고, 휴직 전보다 나아져야 하고, 일 년 전보다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 어제보다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다행이랄까.
시간 아깝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다. 오늘은 꼬인 털실을 풀면서 1시간이 넘는 시간을 썼다. 그래도 괜찮다고 자기 주문을 해야 했지만 다 잘라버리지 않고(한 번만 잘랐다) 시간을 쓴 나를 칭찬하고 싶다. 아, 물론 그러면서 영화 한 편도 봤다. (영화를 보는 것도 나에겐 약간의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