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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Sep 18. 2015

호텔 객실 같은 핀란드 화장실에 없는 것

화장실 칸마다 샤워기 세면대 완비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먹고, 자고, 비워내는 일이다. 유럽여행을 간 한국인들이 처음에 가장 당황하는 일 중 하나가 비워내기 위해서는 돈이 든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공공화장실에서 이용료를 받는다. 요금은 0.2~1유로(약 230원~1160원) 사이로 동전으로 지불할 수 있는 범위다. 물론 호텔, 식당, 공공기관, 박물관 등 무료인 곳도 있다. 그러나 일단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점은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2010년 프랑스 파리 여행 당시 한 식당에 딸린 화장실에 갇혀 애를 먹은 적이 있다. 프랑스어는 할 줄 모르는 터라 큰소리로 “도와주세요(Help)”를 연발했더니 식당 직원이 구해줬더랬다. 이번 북유럽 여행에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랐건만 또 화장실에서 문제가 터졌다. 문제의 장소는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맥도날드였다.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에 갔더니 5크로나(약 700원)를 넣어야 쓸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동전을 넣었는데도 화장실 문고리는 열릴 줄을 몰랐다. 옆 칸 사람들은 문제없이 쓰고 있었지만 하필 내가 고른 그 칸이 문제였다. 화장실 밖으로 나가 직원을 붙잡고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별다른 수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다시 화장실로 돌아왔다. 과하게 마신 콜라 탓인지 점점 몸과 마음이 급해져 어쩔 수 없이 옆 칸을 이용해야겠다 싶었다. 그러나 내가 가진 동전은 아까 화장실이 삼켜 버린 그 녀석이 마지막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내 모습이 딱했던지 한 현지 여성이 구원의 손길을 건넸다. 본래 유료 화장실은 앞사람이 쓴 뒤 문이 잠기면 뒷사람이 동전을 넣어 다시 열어야 하지만 그 여성은 화장실을 나오며 문을 붙잡고 있어 줬다.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의 뜻을 전하니 ‘뭐 이런 일로’라는 표정으로 씽긋 웃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일 테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난 뒤에 안 사실이지만 식당이나 쇼핑몰에 딸려 있는 유료화장실은 무료로 이용할 수도 있다고 한다. 화장실 요금을 내면 영수증이 나오는데, 이 영수증을 챙겨뒀다가 상품을 구입한 가게에 제출하면 화장실 이용료를 되돌려준다는 것이다.


△헬싱키의 한 공연장 내 화장실. 칸마다 휴지, 세면대, 물비누, 수건, 샤워기 등이 갖춰져 있다. 대소변용 물 내림 버튼이 따로 있는데 휴지통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공연장 내부 모습. ©이혜원


헬싱키의 한 화장실에 두루마리식 수건이 걸려있다. 뽑아서 쓰는 것이 아니라 롤링 구조로 돼 있다.  ©이혜원


유럽 10개국의 화장실을 사용해본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가장 깨끗한 건 핀란드였다. 북유럽 화장실은 대개 깨끗한 편이었는데 그중에서도 핀란드가 으뜸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헬싱키의 한 공연장 안에 있는 화장실이다.

화장실에는 약 10개의 칸이 있었는데 각각의 칸마다 휴지는 물론이고
세면대, 물비누, 수건, 샤워기까지 갖춰져 있었다.


다만 그 많은 것중에 휴지통은 없었다. 화장실 수압이 강했던 점으로 미루어 봤을 때, 변기에 휴지를 넣어도 막히는 일이 없어서 인 것 같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왜 샤워기가 있어야 하는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공공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라고 갖다 놓은 것은 아닐 테고. 나중에 알아보니 이 샤워기는 비데 역할을 한단다. 그제야 다른 화장실에서 봤던 작은 세면대의 용도도 이해가 갔다. 손을 씻기에는 무척 낮은 곳에 설치돼 있던 그 세면대들은 다른 쓰임새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유럽여행을 하며 좋은 화장실만 만난 것은 아니다. 보통 한국 화장실에는 변기 위에 엉덩이를 받칠 수 있는 안장이 있다.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갔던 런던 공항 화장실에는 변기 안장이 없었다.


얇디 얇은 변기 테두리 위에 앉으니 금방이라도 엉덩이가 변기 속으로 빠질 것 같았다.(다행히도 엉덩이가 커서 빠지진 않았지만.) 파리에 있던 한 화장실은 유료임에도 위생상태가 형편없었다. 그럴 때면 무료로 비교적 깨끗하게 이용할 수 있는 한국 화장실이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공공화장실에서 이용료를 받는다. 요금은 보통 1천원 안팎이다. 핀란드의 한 공중 화장실. ⓒ 이혜원
이 화장실의 이용료는 0.5유로, 한국돈으로 약 700원 정도다. ⓒ이혜원


무엇보다 유럽에서 화장실을 쓸 때 가장 크게 다가오는 차이는 건식(乾式)이라는 점이다. 물이 튀지 않게 건조한 상태를 유지하는 화장실이다. 샤워를 하면 물이 튀기 마련이라 유럽 화장실에는 샤워 커튼이나 샤워부스가 설치돼 있다.

욕실을 쓰고 나면 물을 닦아 건조한 상태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필수다.


여행 초반에는 이런 차이를 몰랐던 터라 유스호스텔의 공동 샤워실을 물바다로 만들어놓았다가 관리인에게 혼쭐이 나기도 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처음이니 모르는 게 당연했다. ‘어글리 코리안’이라며 자책할 일은 아니다 싶었다. 다음부터 안 그러면 될 일이다.


그나저나 몇 년 전 한국에도 북유럽 인테리어가 인기를 끌며 화장실을 건식으로 개조하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배수구를 막고 나무로 된 가구를 설치해 아늑한 공간을 연출하는 방식이다. 습기가 없다 보니 곰팡이나 물때가 생기지 않아 위생적이고 미끄러질 염려도 없어 안전하다는 것이 업체들의 소개다.


최근에는 건식 욕실 만들기 열풍도 한풀 꺾인 듯 보인다. 화장실을 쓸 때마다 물을 처리하는 것도 일이고, 마음 놓고 물청소도 할 수 없는 탓이다. 절충안으로 배수구는 설치하되 습하지 않게 쓰는 국적 불명의 하이브리드 화장실도 등장하고 있다. 화장실 문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정착해 온 만큼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응접실처럼 꾸민 헬싱키의 한 화장실 입구. ▷화장실 내부의 모습. ⓒ이혜원



유럽 여행 중에 많이 먹는 것은 좋다. 그러나 어디서 어떻게 비울 것인가도 함께 고민해야한다. ⓒ이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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