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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Sep 20. 2015

핀란드 뽀통령 ‘무민’에 숨겨진 이야기

무민 엄마 토베 얀손의 작품과 사랑

“토베 얀손은 외딴 섬에 집을 짓고 홀로 살아가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이 문장이었다. 토베 얀손은 ‘홀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동성 연인과 함께 말년을 보냈다. 그러나 출판사는 이 같은 사실이 사회통념과는 거리가 멀다고 판단했는지 ‘홀로’라는 혹을 붙였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결국 이 출판사는 작가 소개를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토베 얀손은 생소한 이름이지만 ‘무민’은 한 번쯤 봤을 법한 캐릭터다. 하얗고 포동포동한, 하마를 닮은 캐릭터다. 핀란드와 스웨덴에서 무민은 최고의 인기스타다. 무민을 원작으로 한 연극과 오페라도 있고 무민 관련 소품들로만 꾸민 테마파크도 있다. 무민은 스웨덴계 핀란드인인 여성작가 토베 얀손의 창작물이다. 2015년 8월에는 ‘무민 더 무비’라는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 개봉했고 무민을 캐릭터로 만든 상품들도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작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려진 바가 없다.     


무민은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속의 동물 트롤이다. 트롤은 못된 아이들을 괴롭힌다고 알려져 있지만 무민은 기본적으로 선한 캐릭터다. ⓒ Moomin Characters


토베 얀손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핀란드에 도착해서였다. 헬싱키에 있는 미술관을 찾다 보니 아테네움이라는 핀란드 국립미술관에서 토베 얀손 100주년 기획전을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국립미술관에서 특정 작가의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를 한다는 건 그 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란 의미다. 우리나라로 따진다면 백남준 혹은 박수근 같은 존재일 테다. 망설임 없이 미술관으로 갔다.   


그의 작품은 규모 면에서나 내용 면에서나 의외였다. 일단은 큰 작품이 많았다. 벽화처럼 가로로 긴 작품들이 미술관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는 삽화가이면서 회화작가이기도 했다. ‘도시의 파티’와 ‘시골의 파티’라는 작품은 너무 아름다워 한동안 넋을 놓고 봤다.  도시의 파티를 보면 화려한 무도장에서 춤을 추는 연인들이 있고, 시골의 파티에는 자연을 만끽하는 연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북유럽 신화의 한 장면처럼 몽환적인 분위기다. 도시와 시골로 나눠 한 쌍의 작품을 만든 것이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의 ‘도시의 춤’, ‘시골의 춤’을 떠올리게 했다.

△△ ‘도시의 파티’.  △‘시골의 파티’. 1947년 작, 헬싱키미술관 소장. <사진=핀란드국립미술관 / Yehia Eweis>   ©토베 얀손 재단
토베 얀손, 가족, 1942년 작, 개인 소장. <사진=핀란드국립미술관 / Hannu Aaltonen>   ©토베 얀손 재단

특히 마음에 와 닿았던 건 토베 얀손의 음울한 작품들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우울함이 있었다. 아기자기한 동화를 그린 작가의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이 작품의 이름은 ‘가족’이다. 그림 한쪽에는 얀손의 어머니가 담배를 피우고 있고(얀손 역시 골초였다), 다른  한쪽에는 검은 옷을 입고 눈을 흘기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전쟁에 나가 생사를 알 수 없는 얀손의 남동생을 걱정하는 마음이 담긴 작품이라 한다.     


누군가의 삶을 ‘어둡다’ 혹은 ‘밝다’로 단정 지을 수 없다.
어느 누구도 평생 우울하거나 평생 행복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토베 얀손의 삶에는 어두운 요소가 많았다는 점을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겠다. 당시 핀란드는 소련과 전쟁 중이었고, 얀손의 남동생은 전쟁에 나가 있었다. 전쟁은 얀손과 그의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놨다. 이 같은 배경이 얀손의 작품에도 투영됐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말이다.


토베 얀손의 초상화. ⓒ토베 얀손 재단


얀손은 동성애자였다. 얀손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삶을 조명한 BBC 보도에 따르면 얀손은 동료 예술가인 툴리키 피에틸라와 함께 말년을 보냈다. 당시 핀란드는 동성애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었다. 연인과의 관계를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의 연인을 ‘투티키’라는 캐릭터로 무민에 등장시켰다. 토베 얀손은 2001년에, 툴리키 피에틸라는 2009년에 세상을 떴다. 핀란드에는 여전히 두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다. 무민월드에는 툴리키 분장을 한 여성이 이곳을 찾은 아이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에서 토베 얀손의 동성애에 대한 공방이 오가자 핀란드의 무민 공식 계정에서도 입장을 냈다. 긴 설명 대신 이들은 토베 얀손과 툴리키 피에틸라가 함께 찍은 사진을 걸었다. 한국에서 이 같은 논란이 불거진 것은 2015년 7월 20일, 무민 공식 계정에 글이 올라온 것은 이튿날인 7월 21일이다. 이들은 사진과 함께 짧은 설명도 곁들였다.

무민은 언제나 사랑과 용기와 관용을 지지할 것입니다.
(Moomin will always stand for love, courage and tolerance.)


자료: 무민 트위터 공식계정(@MoominOfficial) 트위터 화면 캡처





아테네움 미술관 외부 전경. ⓒ 이혜원


토베 얀손 100주년 기념 전시가 열린 아테네움 국립미술관.


주소  Kaivokatu 2, Helsinki FI-00100, Finland


운영시간

월요일 휴관

화, 금 10시~6시

수, 목 10시~8시

토, 일 10시~5시


입장료

일반 13 (약 1만7000원)

할인* 11 (약 1만5000원)

*학생, 연금수급자, 교사, 예술가, 실업자 등

소장품 전시실 모습. 아테네움의 소장품은 회화 4300점, 조각 750점 정도다. 분명 많은 숫자지만 루브르나 영국박물관과 비교하면 아담한 수준이다. ⓒ 이혜원
아테네움 미술관은 헬싱키 중심가에 있다. ⓒ이혜원
소박한 아테네움의 카페. 점심시간에는 간단한 식사도 할 수 있다. 미술관에 있는 카페를 구경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이혜원
핀란드 미술관에선 입장권 대신 몸에 붙일 수 있는 스티커를 줬다. 토베 얀손 전시에선 역시나, 무민이다. ⓒ이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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