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원 Aug 08. 2016

좀 건방져도 된다, 높은 사람 앞에선

국민 대신해 질문하는 기자, 순한 양 될 필요 없다

기자들은 건방지다고들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얘기다. 아무데나 가서 갑질하는 기자는 백번 욕먹어야 마땅하지만 일부러 당당한 척 구는 기자들도 있다. 나 역시 일을 시작하고 깜짝 놀란 부분 중 하나다. 한 기관장의 취임 기자간담회에 갔는데, 선배 기자들의 태도가 너무 건방진 거다. 기관장이 족히 아버지뻘은 돼 보였는데 말이다. 취재진 질문에 어물쩍 넘어가거나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면 지적을 하기도 했다.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웃어른을 공경하라 배웠는데 예의에 어긋나지 않느냐는 생각이었다.


입사 초기엔 선배들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취재원들과 통화할 때 콜센터 직원처럼 상냥하다 못해 저자세로 군다는 것이다. 내 나름대로는 기자라고 으스대지 않으려 친절하게 대한 것인데, 선배들은 지나치게 저자세로 굴지 말라고 했다. 누구를 만나든 당당하라고 했다. 특히 높은 사람을 만났을 때 더더욱. 설사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라도 고개를 돌리고 술을 마시지 않고 눈을 보며 마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납득하기 어려웠던 얘기들이 이제는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보통의 취재원을 만나 건방지게 굴라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다. 나도 기자들의 갑질은 질색이다. 펜대를 쥐고 뭐라고 된 양 구는 기자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 여기서 말하는 당당함은 높은 사람을 만났을 때 쫄지 말라는 얘기다. 계급장이 뭐든, 나이가 몇 살이든 기자와 취재원의 만남은 그래야 한다. 기자들은 국민을 대신해 그 자리에 앉아 질문을 하는 사람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이미 윗분들은 대중들을 개·돼지로 보고 있지 않나. 주류 언론은 정부에 길들여져 순한 양이 돼가고 있고. 기자들은 지금보다 조금 건방져도 된다. 높은 사람 앞에선 말이다.




중기이코노미에 2016년 8월 7일자로 보도된 기사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습시절 노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