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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Sep 02. 2016

퇴근 후 일광욕, 저녁이 있는 삶

해지면 문 닫는 상점·주말에 쉬는 쇼핑몰

8월 말 늦은 여름휴가로 영국에 다녀왔다. 아침 일찍 런던에 도착해 여행용 가방을 사러 대형 쇼핑몰에 갔는데 모두 문이 닫혀있었다. 일요일 오전 11시인데 말이다. 쇼핑몰 입구 안내판을 보니 평일은 오전 10시부터, 일요일은 낮 12시부터 영업을 한다 적혀있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빨간 날엔 일을 적게 하는 유럽에 왔구나.


처음 유럽여행을 가면 놀라는 것 중 하나다. 주점을 제외한 상점들은 해가 지면 대부분 문을 닫는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영국 직장인들은 대개 5시면 퇴근을 한다. 카페, 상점도 저녁 6시에서 8시 사이면 마감이다. 그나마 오래 영업을 하는 스타벅스도 저녁 8시면 문을 닫았다. 한국처럼 24시간 영업을 하는 맥도널드 매장이 있기는 하나 많지는 않다. 유럽은 밤에 할 것이 없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한국 여행객들도 있다. 일요일에 문 닫는 쇼핑몰을 보면 놀라기까지 한다. 주말이 쇼핑 대목인데 쉰다면서.


국가별 차이가 궁금해져 의류 브랜드 자라(ZARA)의 영업시간을 비교해 봤다. 자라 같은 다국적 기업은 여러 나라에서 규격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영업시간은 법 규제 때문에 조금씩 다르다. 한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핀란드 등을 비교해보니 역시나 달랐다. 주말 영업시간이 평일과 같거나 긴 곳은 한국과 일본 뿐이었다. 한국 자라의 영업시간은 오전 10시~밤 10시 사이로, 세계에서 가장 긴 축에 속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평일 저녁엔 8시까지 영업을 하고 일요일엔 쉬는 경우가 많았다. 영국과 핀란드도 평일 영업시간은 다른 나라와 비슷하고 일요일엔 낮 12시부터 저녁 6시까지 단축영업을 했다.


늦은 영업시간에 대해선 여러 감정이 오간다. 소비자들이야 늦게까지 놀면 좋지만 일하는 사람들 입장은 다르다. 먹고살기 위해 남들 놀 때 일을 한다. 영업 방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이들도 있고, 추가 수당을 생각하며 야근을 자청하는 이들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든 휴식권을 반납하고 근로권을 취한다. 한국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한국에서 일하는 영국인 친구는 우리네 밤문화를 참 좋아한다. 강남, 이태원, 홍대 어디를 가든 네온사인이 반짝이고 놀거리, 먹을거리, 살 거리가 가득하니 천국이라는 것이다.


문득 웨일스 수도 카디프의 금요일 저녁 5시 30분 풍경이 떠오른다. 모처럼 맑은 날이었다. 퇴근한 직장인들은 잔디밭에 드러누워 일광욕을 했다. 한 커플은 야외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다. 휴가를 낸 건지, 일찍 퇴근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신랑 신부의 친구들도 많이 참석했다. 야외 좌석을 갖춘 펍은 북새통을 이뤘다. 그들은 아직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맥주를 들이켰다. 매주 우리보다 조금 빨리 ‘불금’을 맞는 모습이 부러웠다. 이런 게 저녁이 있는 삶인 걸까.


영국 웨일스 수도 카디프의 시청앞 잔디밭. 친구 결혼식에 온 남성과 그의 아들. 저 아이 너무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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