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숙주의 내려놓은 경향신문 특별판…종이신문의 희망을 보다
종이신문 위에 반쯤 뜯긴 컵라면과 삼각김밥이 놓여있다. 먹다 흘린 면발과 라면국물 흔적도 선명하다. 그 밑엔 손글씨로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오늘 알바 일당은 4만9천원... 김영란법은 딴 세상 얘기. 내게도 내일이 있을까?”
지난 6일 창간 70주년을 맞은 경향신문 1면이다. 온라인에선 종이신문 위에 컵라면을 올려놓은 사진처럼 보이지만 컵라면도, 삼각김밥도, 손글씨도 모두 신문 편집의 일부다. 심지어 이 디자인은 헤드라인과 기사 일부를 가리기까지 했다. 광고천재라 불리는 이제석씨의 작품이란다. 창간특집 제작노트에서 경향신문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신문 위의 컵라면과 삼각김밥은 고달픈 청년들의 상징이다. 기성세대의 형식적인 엄숙주의를 조롱하며 청년 문제보다 더 중한 것이 무엇인지 반문하고 싶었다”고.
파격적인 선택이다. 기성세대의 엄숙주의에 대한 조롱인 동시에 종이신문 자체에 대한 자성으로도 읽힌다. 종이신문 구독률은 바닥을 치고 있다. 일반 국민들에게 종이신문은 엄중한 사초(史草)라기 보단 배달음식 받침대, 반려견 배변판, 엉덩이깔개로 더 친숙하다. 신문쟁이들에겐 씁쓸한 일이지만 현실이 그렇다. 경향신문은 종이신문의 부흥을 외치는 대신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았다. 그 점이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끌어당긴다.
매체 활용 면에서도 탁월했다. 온라인용이었다면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을 테지만 종이신문 위에 컵라면을 올려두니 훨씬 몰입도가 살아난다. 일상에서 많이 봤던 익숙한 풍경이어서다. 모두가 종이신문의 종말을 외치는 가운데 간만에 희망을 본 듯싶다. 아무리 영상기술이 발달해도 라디오는 꿋꿋이 살아남았으며, 전자책이 뜰 땐 종이책이 사라질 거란 전망이 우세했지만 아직 건재하다. 종이신문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신문쟁이들이 시대 흐름을 읽기 위한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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