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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Nov 24. 2016

서교→합정→망원→문래예술가들, 밖으로 밖으로

“창작공간 공급자·예술인에 인센티브 주고 지역사회 환원토록 해야”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1-21. 과거 예술인들을 위한 화방이었던 이곳은 이제 대기업 의류 편집숍으로 바뀌었다. <자료=다음 로드맵 화면 캡처 후 재가공>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1-21. 홍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소다. 2009년까지만 해도 이 자리는 홍대생들과 인근 거주 예술인들을 위한 화방이었다. 그러던 것이 2011년에는 보세 옷가게로, 2013년에는 중견 의류기업의 옷가게로, 2015년에는 대기업 계열 편집숍으로 바뀌었다. 불과 6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홍대 인근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인 클러스터였다. 과거 서교동 ‘호미화방’, 홍익대 내 ‘한가람문구센터’ 등 대형 화방을 비롯해 전시장소도 많았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클럽, 카페, 의류가게들이 들어서며 임대료가 올랐다. 예술인들은 서교동에서 조금 떨어진 상수동과 합정동 작업실을 구하기 시작했다. 2010년 이후에는 이 지역 역시 임대료가 오르면서 망원동과 한강 건너 문래동까지 밀려났다. 이에 따라 최근 뜻하지 않게 예술촌을 갖게 된 문래동은 또다시 ‘뜨는’ 동네가 됐다. 상권 확장으로 원래 주민들이 밀려나는 현상,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연속이다.


예술가들의 젠트리피케이션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서교동의 예술·창작 관련 사업체 종사자, 즉 예술인은 2006년 282명에서 2010년 1564명까지 늘었다가 2014년에는 1078명으로 줄었다. 연남동 역시 33명(2006년)→136명(2010년)→129명(2014년)으로 2010년 정점을 찍은 이후 줄어드는 추세다. 반면 서강동(상수동 포함)은 2006년 예술인이 한 명도 없었으나 2010년에는 74명, 2014년에는 113명으로 늘었다. 예술인들이 새로 터를 잡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2014년 서울시 사업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 통계를 산출한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경민 교수(도시 및 지역계획학)는 23일 서울시가 주최한 ‘최소한의 창작 조건, 예술가의 작업실’ 심포지엄에서 “이 자료는 예술인 클러스터로서 서교동의 쇠퇴와 함께 클러스터가 공간적으로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예술인 창작공간의 이동은 상업화와 임대료 인상의 결과”라고 했다.


예술인들의 삶은 척박한 실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5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들이 예술활동으로 벌어들인 연수입은 1255만원에 불과했다. 예술인들이 교육·아르바이트 등 비(非) 예술활동으로 얻은 수입은 연평균 1552만원으로, 본업으로 번 돈보다 많았다. 그러나 이마저도 평균의 함정이다. 평균이 아닌 중위값을 기준으로 보면 미술가와 사진가는 연평균 0원을 벌었다. 중위값이란 소득을 기준으로 전체 예술인을 일렬로 세웠을 때 정중앙에 위치한 사람의 소득을 추출한 값이다. 국내 미술가와 사진가의 절반 이상은 본인의 예술활동으로 벌어들인 소득이 없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예술인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작공간을 개발하는 민간에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민간 참여를 견인하기 위해서는 용적률 인상, 토지용도 변환 허용, 건설비용 일부 금융지원 등의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면서 “인센티브를 받은 개발업체가 예술인들에게 적정한 수준의 임대료를 책정했는지를 감시해야 한다. 용적률 인상 특혜를 받아 건물을 더 높게 올렸음에도 시장 가격과 동일한 임대료를 받는다면,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에 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인센티브는 결국 국민들의 세금 부담이다. 예술인 창작공간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예술가 스스로가 지역사회, 나아가 우리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보여주고 설득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인센티브 최종 수혜자인 예술인들은 일종의 책임감을 갖고 지역사회에서 합당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지역사회 예술교육과 같은 형태로 공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972년부터 런던에서 예술가들을 위한 저렴한 창작공간 ‘아크메(ACME)’를 운영하고 있는 데이비드 팬톤 디렉터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미술가 대부분은 창작활동을 통해 작업실을 빌릴 정도의 돈을 벌지 못한다. 이들은 교육, 지역사회 개발에 참여함으로써 사회 전반에 걸쳐 혁신과 창의성을 북돋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예술가들이 지역사회에 계속해서 혜택을 제공하려면 이들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의 임대료가 책정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http://www.junggi.co.kr/article/articleView.html?no=17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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