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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Nov 25. 2016

보통사람들에 대한 배신

기자의 역할, 국민의 책무


전통시장에서 59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감자국 가게에 인터뷰를 갔다. 취재도 할 겸, 식사도 해결할 겸 감자국 1인분을 시키고 앉아 기다렸다. 옆 테이블에선 중년 남성 두 명이 낮부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어깨너머로 대화가 들려왔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크게 달라질까 싶기도 해. 우리 같은 민초들은 그저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지” 둘은 한참이고 시국 얘기를 이어갔다. 그중 한 명은 대학생인 딸이 졸라서 함께 촛불집회에 다녀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딸의 앞날을 걱정했다. “세상이 이래서…. 스카이 대학도 못 나왔는데,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싶어”


평소와 다르게 어머니가 뉴스를 보며 자주 속내를 드러낸다. 믿었던 것들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한다. 어머니는 15년째 동네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소상공인이다. “불경기라 장사가 안 돼. 요 몇 년 사이 자영업자들이 먹고 살기 얼마나 힘들어졌는데. 우리가 이러는 동안 대통령은 저러고 있었다니….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너무 뻔뻔스러워, 화가 나”


분노와 한탄이다. 서민들은 스스로를 민초라 칭하며 허탈함을 말한다. 대통령 지지율이 4%라는 여론조사 결과와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시민들의 반응을 ‘우리사회’라는 관념적인 공간이 아닌 내 삶의 현장에서 바로 보고 들을 수 있다. 시민들은 최순실을 필두로 한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하며 광화문 광장을 촛불로 메웠다. 우리가 바꿔보자, 시민의 저력을 보여주자는 열의다. 막상 탄핵 정국에 진입하니 한편에선 회의 섞인 말들도 나온다. 과연 이런다고 달라질까, 대통령이 바뀌면 우리 사회가 정말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을 열어 새 소식이 없는지 확인하고, 퇴근 후엔 예능프로그램 챙겨보듯 TV 뉴스를 본방사수하며 이슈를 따라간다. 청와대 비아그라니, 프로포폴이니 하는 단어들이 나오니 이제는 눈과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다. 아무리 국정을 제멋대로 운영했기로서니 저것만은 사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두 눈을 부릅뜨고, 두 귀를 활짝 열어둘 것이다. 그리고 쓰겠다. 이것이 2016년 국정농단 사태의 중심에서 기자의 역할이자 시민의 책무라고 믿는다.


http://www.junggi.co.kr/article/articleView.html?no=17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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