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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Dec 02. 2016

편의점에 몸을 구겨 넣는 사람들

중장년 구직난이 만든 쓸쓸한 초상화

대형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두 곳의 창업설명회를 찾았다. 프랜차이즈 관련 기획 취재를 위해서였다. 한 곳은 편의점, 나머지 한 곳은 치킨 가맹본부였다. 기자 신분을 밝히지 않고 예비창업자 입장에서 설명회를 듣고 상담도 받았다. 두 가맹본부 모두 공통적으로 꺼낸 얘기가 있었다. “창업하면 도와주실 가족 있나요?” 편의점 가맹본부에선 “인건비 한두 푼이 아쉬운 처지니 가족들이 한 명이라도 더 도와줘야 더 많은 돈을 챙겨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편의점은 가족형 자영업이다. 퇴직 후 일자리가 마땅찮은 부부가 적은 자본에, 별다른 기술 없이도 운영할 수 있는 편의점 창업에 도전하는 식이다. 평소 편의점 점주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는 편이다. 출근길엔 아침을 해결하려 들르고, 오후에 출출할 땐 간식을 사러 간다. 첫 직장 근처엔 W편의점이 있었는데, 50대 중반의 부부가 교대로 근무했다. 아주머니와 친해져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눴었다. 아주머닌 본인도 젊은 시절엔 직장생활을 하며 잘 나갔었단 얘길 했다. 직장생활에 대한 조언도 종종해줬다. 그 직장을 그만두던 날엔 일부러 편의점에 들러 작별인사를 했다.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약속했다.


회사를 옮기고선 G편의점을 애용 중이다. 그 가게도 60대 부부가 교대로 근무한다. 낮엔 아내가, 밤엔 남편이 일한다. 출근 시간대엔 두 사람이 함께 일을 한다. 남편은 새로 들어온 물건을 정리하고 아내는 카운터를 보는 식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야간 아르바이트생이 있었지만 수입이 여의치 않자 결국 남편이 야간근무를 보기로 했다고 한다. 하루쯤 쉬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없다.


대부분의 점주들은 24시간 근무, 연중무휴로 가맹본부와 계약을 맺는다. 손님이 뜸한 명절도 예외는 아니다. 명절에만 일해 줄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남들은 다 고향으로 떠나고, 차례를 지내는데 편의점주는 가맹본부에서 야심차게 기획한 명절특선 도시락을 판다. 생계 때문에 명절에도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명절특선 도시락으로 허기를 달랜다. 평소보다 반찬은 푸짐한데 마음의 허기만은 채워지지 않는다.


쓸쓸한 도시 풍경이다. 일 년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 편의점을 두고 ‘도심 속의 등대’라고도 한다. 쉴 수 없는 점주들에겐 속 쓰린 말이다. 퇴직 후 일자리가 마땅찮은 중년들은 오늘도 한 뼘 남짓한 편의점 카운터에 몸을 구겨 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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