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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Sep 30. 2015

핀란드 승무원은 왜 불친절했을까

친절과 불친절의 아이러니

“비행기 떠날 시각 다 됐는데, 이제 오시면 어떡해요!”     


맘씨 좋게 생긴 핀에어 직원이 나를 다그쳤다. 공항버스가 생각보다 오래 걸린 탓이었다. 비행기가 뜨기 40분쯤 전에야 체크인을 했다. 스웨덴 말뫼에서 핀란드 헬싱키로 향하는 비행 편이었다. 중년 여성 직원은 버럭 화를 냈다. 다음부턴 절대 이러지 말라는 신신당부와 함께 가까스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핀에어 직원과의 불편한 만남은 처음이 아니었다. 헬싱키에 도착해 너무 신난 나머지 공항 밖으로 뛰쳐나왔는데 그제야 수하물을 찾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던 것. 수하물 찾는 곳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다시 그곳으로 갈 수는 없게 돼 있었다. 비행을 마치고 나온 핀에어 직원을 붙잡고 물어봐도 내 일이 아니라는 식이었고, 공항 안내센터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최후의 수단으로 공항에 있는 비상전화를 집어 들고 사연을 설명했다. (내가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가에 대해서.)  


전화기 앞에서 10분쯤 기다렸을까, 무표정한 핀에어 직원 한 명이 걸어 나왔다. 자신을 따라오라며 앞장섰다. 그 직원은 보안카드를 여러 번 찍어야 하는 여러 개의 출입구를 거쳐 나를 짐 찾는 곳으로 안내했다. 어쩌다 그랬느냐는 비난도, 많이 놀라셨죠 같은 위로도 없었다.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나를 인도했다. 여러 개의 출입구를 거치고 나니 짐 찾는 곳이 나타났다. 아무도 없는 그곳엔 빨간 배낭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핀에어는 핀란드의 국적 항공사다. 인천에서 핀란드 수도인 헬싱키까지 가는 직항편을 운항 중이다. 출국과 입국 모두 핀에어를 이용했다. ⓒ이혜원


너무 불친절한거 아냐?


한국에서 비슷한 일을 겪어본 적은 없지만 짐작컨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었다면 그렇게 대처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핀에어 직원들은 한국 승무원들과 고객을 응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한국 승무원들이 고객을 ‘모신다’는 느낌이라면 핀란드에선 인간 대 인간의 만남으로 응대를 한다는 뉘앙스였다. 상하관계나 갑을관계가 아니라.      


과도한 친절함도, 상냥한 말씨도 없었다. 비단 승무원만의 얘기는 아니다. 커피숍, 기차역, 레스토랑에서 만난 서비스직 종사자들이 그랬다. 무뚝뚝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친절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종업원이라는 위치가 아니라 순전히 개인 성격의 문제였다. 매뉴얼에 따른 친절이 아니었다. 너무 자유분방해 나를 당황하게 만든 직원도 있었다. 스웨덴 기차역에서 발권을 해주던 젊은 여성은 나와 말하는 도중에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가 하면, 바퀴가 달린 의자 위에서 바퀴에 몸을 지탱해 몸을 이리저리 옮기며 “이거 너무 재미있다”며 깔깔대기도 했다. 누군가는 무례함이라 느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당당함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동전의 양면이다.


고객 입장에서야 서비스 직원이 친절하면 좋다. 직원 입장에서는 친절 강요가 압박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한국 대기업의 서비스 직원들은 정말 상냥하다. 콜센터 직원은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며 전화를 받고, 아무리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이라도 일단 얘기를 끝까지 들어준다. 가전제품 서비스센터 직원은 고객이 오면 의자를 빼주고, 상담 말미에는 서비스 만족도 평가에서 “별 다섯 개를 부탁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그들에게 친절함의 정도는 생계로 직결된다. 서비스직 종사자들의 감정노동 문제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쯤 되면 과도한 친절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핀란드 헬싱키 반타공항. 핀에어 건물이 보인다. ⓒ이혜원


서비스직 직원들의 처우와 친절함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뉴스페퍼민트에서 번역한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덴마크 버거킹 직원의 시급은 20달러(약 2만4000원)다. 이 보도에 등장하는 버거킹 직원은 “덴마크에서는 패스트푸드점에 일하면서도 꽤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일을 마치고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저금을 한 뒤에도 소소한 여가생활을 누릴 수 있는 여유가 된다는 것이다. 


덴마크 버거킹 직원이 하루 8시간씩 일했을 때 월급은 약 380만원이다. 한국 패스트푸드점은 보통 최저임금을 시급으로 책정하는데 2016년 시급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약 126만원이다. 덴마크와는 두 배가 넘게 차이가 난다. 물론 한국과 덴마크의 사례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단적으로 물가만 봐도 덴마크는 북유럽 가운데도 가장 비싼 축에 속한다. 그럼에도 이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아 보인다. 햄버거 가게에 일하면서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날이 한국에도 올까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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