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든, 트위터든, 브런치든, 인스타그램이든. 수많은 채널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접하면서 우리는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당연히 내 마음에 드는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구독하기 버튼을 누른다. 다음에도 또 보기 위해서다. 어떤 사람이 쓴 글이 마음에 들어서 구독을 했는데 어느 날 보니 내 견해와는 전혀 다른 얘기를 늘어놓으면 멈칫, 한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어 친구를 맺었으니 단번에 구독을 끊지는 않는다. 첫 번째엔 "어라..?" 했다가 두 번째엔 "또?" 하고 세 번째엔 "안 되겠다" 하며 친구를 끊거나, 블라인드 처리를 하거나, 구독을 중단한다. 내 피드에 노출되는 그 사람의 견해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선 인지부조화라고 한다. 불편하게 만드는 걸 피하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습성이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트위터나 브런치 같은 곳엔 내 눈에 거슬리지 않는 글들만 남는다. 내가 팔로잉하는 사람이 1000명이 되고, 10000명이 되면 슬슬 재미가 붙는다.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는 떡밥이 등장하면 친구들은 저마다 상황에 맞게 저마다의 견해를 늘어놓는다. 촛불집회 100만이라는 이슈가 벌어진다면 촛불집회의 유래를 설명하는 역사 전문가도 있고, 정치적 상황을 분석한 평론가도 있고, 이 훈훈한 풍경을 그림으로 담은 일러스트레이터도 있고, 현장을 취재한 기자도 있고, 집회 뒷얘기를 적은 주최 측 사람의 글도 있다. 집회에 다녀오지 않아도 이런 글들을 보면 역사의 한 페이지에 서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지며, 우리 국민들이 자랑스러워진다. 이 사람의 피드에 "태블릿 PC 조작의 또 다른 증거"와 같은 글이 뜰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그런 글을 쓰는 친구는 애 진작에 걸러졌을 테니까. 우리는 많은 사람의 글을 구독할수록 더 많은 생각들을 받아들인다고 '착각한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피드를 읽으며 '역시 내 생각'이 맞다며 다시 한번 내 믿음을 공고히 한다. 실은 내 눈에 거슬리는 정보는 배제하고 입맛에 맞는 것들만 골라놓은 것인데도 말이다.
오늘 나온 인터뷰를 보니 박근혜 대통령(이었으나 지금은 권한이 중지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를 믿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 잘못 생각한 거다. 그들은 박근혜라는 인간을 믿는 것이 아니라 여태껏 자신이 고수해온 믿음 그 자체를 믿고 있는 거다. 박근혜에 대한 지지 철회는 지금까지 쌓아온 믿음에 대한 부정이요, 자신의 세계관에 대한 부정이고, 나아가선 자아에 대한 부정일 수도 있다. 믿음의 기간이 길었을수록 철회는 어려워진다. 그러니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어떻든, 검찰의 판단이 어떻든, 법원의 판결이 어떻든 그들은 결코 믿음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진실은 단 하나뿐이지만 우리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그 사실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포털이나 브런치의 개인화 서비스가 무섭다. 내 입맛에 맞는, 내 취향에 맞는 글들을 알아서 노출시켜준다는 게 걱정스럽다.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지만 정작 제대로 된 정보가 얼마나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놓을 수가 없다. 며칠 전 어느 의사가 의학 정보가 넘쳐난다며 걱정스럽게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 가슴에 꽂혔다. "지나친 정보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