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원 Jul 16. 2019

나이를 먹는다는 건 괴로울 수밖에 없다

내 삶의 제1원칙은 정직이었다.


그랬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자 노력해왔다. 그보다 더 많이 노력한 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려는 거였다. 떳떳하게 살자는 것. 그 사람 앞에서 못할 얘기라면 뒤에서도 (되도록이면)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곤경에 빠트리지도 말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기만하지 말고.


스무 해 이상 비교적 그 원칙을 잘 지키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살다 보니 하나씩 지키지 못하는 것들이 생긴다. 과정은 대개 이렇다. 신념을 지키려 노력해 본다 → 잘 안 된다 → 그래도 노력해 본다  → 그래도 잘 안 된다. 자꾸만 다짐이 바스러진다.  → 지키지 못할 이유들을 생각해낸다  →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이렇게 사는 것 같다  → 그래 이 정도는 괜찮아.(자기 합리화)


초등학교 4학년 때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성당에서 세례라는 건 다시 태어나는 일이다. 그동안 살면서 지은 죄를 모두 용서받고, 그 시점부터 다시 내 인생이 시작된다. 세례를 받기 위해 몇 달간 교리 공부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세례를 받았다. 그때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의 나는 무교에 가깝지만 당시의 느낌을 떠올려보면 영적인 감정이 무엇인가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 완전히 깨끗해진 느낌을 받았다. 지금껏 살며 지은 죄들 - 그래 봐야 10년 남짓한 삶이지만 -로부터 구원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너의 죄를 사하노라." 성당에서는 이렇게 얘기한다. 한편으론 두렵기도 했다. 이제 완전히 무의 상태로 돌아왔는데 내가 또 죄를 지으면 어쩌지? 다시 더럽혀지면 어쩌지? 나름대로의 해결책은 있었다. 죄를 짓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죄를 짓고 나면 주말에 성당에 가서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했다. 11살짜리 소녀지만 살면서 죄를 지을 일은 많았다. 매주 고해성사 때 신부님께 나의 죄를 토로하며 괴로워했다. 죄를 인정하고 구술한다고 해서 그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한결 나아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성당에 다니지 않는다. 그리고 이따금씩 성당에 다녔던 시절을 떠올린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있나라는 물음을 던지고 나면 성당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서러울 수밖에 없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점점 짧아진다. 새로운 일을 도전하고자 할 때 선택의 폭이 점점 좁아진다. 이것은 핑계도 아니고, 패배주의도 아닌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이 40대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뒤늦게 빛을 본 이도 있고, 60대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유명해진이도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예외적인 일이다. 있는 그대로를 놓고 보자면 나이가 들수록 기회의 폭이 줄어드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해할 수 없었던 어른들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 2018년 6월에 적어놓았던 일기. 이때의 내가 어떤 마음이었더라..



매거진의 이전글 운동을 열심히 하면 살이 빠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