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푸드다! 이런 게 바로 소울푸드였구나! 삿포로에서 스프커리를 먹자마자 든 생각이다. 음식을 먹으며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난생처음, 스프커리를 먹고 그 단어를 떠올렸다.
한국은 이상기온으로 무덥던 4월 중순, 삿포로는 추웠다. 눈이 왔다. 세찬 바람을 맞으며 찾아간 작은 스프커리집. 정말 감동적이었다. 스프커리는 커리인데 스프처럼 떠먹을 수 있도록 묽게 끓인 음식이다. 한국에서 만드는 카레도 물을 많이 넣어 끓이면 이렇게 될 수도 있겠지만 삿포로에서 '스프커리'는 고유명사 같은 느낌이다. 정해진 공식 같은 게 있다.
이렇게 생긴 음식. 내가 시킨건 치킨스프커리다. 매콤한 커리에 닭다리, 삶은 달걀, 감자, 브로콜리, 버섯, 당근, 미니옥수수, 토마토, 단호박, 목이버섯, 쪽파, 다시마 등이 들어간다. 일단 기억이 나는 것들만 이 정도다. 엄청 많은 야채가 들어가는데 각각이 정말 맛있다. 모든 식재료들이 잘 익어서 입에서 살살 녹는다. 브로콜리에 무슨 짓을 한 건지 달콤하고, 당근조차 맛있다. 진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이었다.
밥, 그리고 치킨스프커리. 치킨은 닭다리가 들어갔는데 하루 종일 삶았는지 입에서 살살 녹는다.
쌀밥에 작은 김 두 개를 얹어줬다. 밥하고 같이 호호 불어가며 떠먹으면 된다.
삿포로 맥주와 함께.
먹다 말고도 또 감동해서 사진을 찍었다. 먹던 음식이라 보기는 안 좋지만 재료들을 보여주고 싶어서. 닭이 정말 부드러워서 깜짝 놀랐다. 감자도 짭짤한 게 별미였는데, 감자가 홋카이도의 특산품이라 한다. 홋카이도는 일본 열도의 북쪽에 있어 날씨가 춥다. 감자랑 옥수수가 특산품이라는 거 보니 한국으로 치면 강원도 같은 느낌.
이렇게 만든다고 합니다. 무슨 뜻인진 모르겠지만 사진을 보며 정성스럽게 재료들을 끓여 육수를 내 만드는 것 같다.
1인분에 780엔. 비싸서 못 사 왔는데, 사 올걸..
함께 간 친구들도 스프커리에 완전 열광했다. 2박 3일 일정이었음에도 마지막 날 또 스프커리를 먹기로 했다. 첫날 갔던 그 집에 다시 가고 싶었지만 동선이 맞지 않아 할 수 없이 공항에 있는 집으로 선택.
비주얼부터가 달라요..
밥은 많이 줬는데..
어딜 가나 공항 음식은 비싸고 맛은 그냥 그렇다. 첫날 먹은 음식에 비하면 너무 실망스럽지만 그냥저냥 먹었다.
삿포로 스프커리 앓이를 그렇게 하다 한국에 와서 또 갔다. 삿포로에 갔던 멤버들과 함께. 서울 연희동에 있는 시오라는 가게다. 기대 반, 걱정 반 마음으로 찾았다.
이건 돈까스 스프커리. 밑반찬도 아주 잘 나온다. 연어샐러드에 나물에 김치, 연두부, 부침까지. 가격은 14,000원.
콩, 콜리플라워, 연근도 들어가 있었다. 정말 맛있었는데 삿포로에서 먹던 그 느낌은 아니었다. 칼바람을 뚫고 들어가 스프커리가 빨간 볼을 서서히 녹여줬던 그날의 상황이 좋았던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