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왔다. 소파에 누워 뒹굴뒹굴하며 티비를 보고 구 내방(현 엄마방)에서 밤이와 잠을 잤다. 엄마가 침대에 텐트처럼 생긴 모기장을 쳐놨는데 이게 묘하게 안정감 있고 좋다. 밤이도 모기장 안이 마음에 들었는지 내 품에 쏙 안겨서 잠을 청하고 가르릉 소리를 내며 무려 꾹꾹이까지 해주었다 [!] 처음으로! 꾹꾹이는 고양이가 사람에게 다가와 손으로 꾹꾹 누르는 건데 아주 기분이 좋고 상대를 신뢰할 때만 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아기 고양이가 엄마 찌찌를 먹을 때 더 잘 나오게 하려고 꾹꾹 눌렀던 기억에서 비롯됐다는..
아침에 늦잠을 자고- 엄마가 끓여준 홍어 둥지비빔냉면을 먹고 또 뒹굴거렸다. 와,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는 거 너무 오랜만이라 좋았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땐 집에 있는 시간 중 95%를 누워있었다. 정말로. 근데 나와 살면서는 집안일하느라 누워있을 시간이 별로 없어서.. 밤이와 함께 살고나서부턴 더더욱 그렇다. 집에 와서 밤이 화장실 청소하고 밥 주고 조금 놀아주다 보면 잘 시간 ㅠ_ㅠ 좌우지간 빈둥거릴 수 있는 게 이렇게 좋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점심 겸 저녁으로는 홍어전과(엄마가 홍어를 홈쇼핑에서 잔뜩 사 놔가지구) 닭발에 맥주를 마셨다. 아, 엄마의 풍족한 식탁도 정말 오랜만이야. 혼자 지내는 정돈된 일상도 좋지만 이렇게 북적거리는 느낌도 참 좋다. 금요일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것 같았는데 주말을 잘 보내고 나니 마음이 따뜻하다. 해질녘 집에 돌아와 침대와 매트리스 청소를 하고 밀린 쓰레기를 버리고 빨래를 널고 도시락을 싸고 내일 입을 옷을 꺼내 다림질을 했다. 또 한주를 살아갈 힘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