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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Oct 24. 2017

그를 위한 생일상, 엄마의 밥상

1. 생일을 며칠 앞둔 남자친구가 갑자기 러시아 출장이 잡혔다. 꼼짝없이 타지에서 생일을 보내게 생겼다. 하루 전 출장명령이라니, 덩달아 내 마음도 급해졌다. 아직 선물도 준비 못 했는데. 불현듯 생일상을 차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하다 말고 미역국 끓이는 방법을 찾아봤다. 핸드폰이 고장 나 집에 가면 검색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미역은 물에 30분 정도 불리고, 양지 국거리는 참기름에 볶고, 국간장을 넣어 한소끔 끓이면 된다고 한다. 30년간 먹어만 봤지 끓여본 적은 없다. 자신은 없지만 해보자. 혀끝의 기억을 믿어보자.


집 근처엔 슈퍼가 없다. 퇴근하자마자 회사 앞 마트에서 장을 봤다. 내 손바닥보다 작은 한우 양지는 1만원이나 했다. 미역국에 들어있던 소고기가 이렇게 귀한 거였구나. 마른미역은 가장 작은 걸로 골랐는데도 20인분 짜리다.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오늘따라 버스가 많이 막힌다. 후덥지근한 버스, 가방 안에선 소고기가 흐물거리며 녹아내리고 있다. 초조하다.


2.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도 안 갈아입고 미역부터 불린다. 고기는 칼 대신 가위로 싹둑싹둑 잘랐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물을 부어 끓인다. 물이 끓는 동안 재빨리 웃옷만이라도 갈아입는다. 미역도 30분이나 불릴 시간이 안 될 것 같다. 적당히 불리고 끓는 물에 넣는다. 간장을 살짝 넣은 다음 보글보글 끓여 간을 본다. 생각보다 맛있다. 아니, 내가 기억하는 그 미역국의 맛이다. 그동안 엄마가 끓여줬던 그 맛. 이거면 됐다.


이제 고기를 구울 차례다. 마침 추석 때 엄마가 바리바리 싸준 양념소고기가 냉동실에 있었다. 이게 없음 어쩔 뻔했어. 냉동실에 있는 청양고추를 썰어 국물에 매운맛을 입히고, 다진마늘과 파도 넣어주고, 양파도 썰어 넣어 단맛을 더해준다.


밥도 엄마의 찬조품이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잡곡밥을 얼려 1인분씩 지퍼백에 넣어뒀다.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금방 한 밥처럼 맛있다. 내가 음식은 안 가리고 잘 먹는데 유독 밥만은 조금 가린다. 즉석밥은 플라스틱 냄새가 나서 좋아하지 않는다. 엄마는 나 몰래 햇반을 데워 밥그릇에 담아 식탁에 내놓곤 했다. 까탈스러운 딸내미는 모른 척하고 먹을 것이지, 꼭 한 마디를 했다. "엄마, 이거 햇반이지!!" 어쨌든 먹을 거면서. 그땐 누가 차려주는 밥이 그렇게 귀한 줄 몰랐던 거다. 여튼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엄마는 투덜대면서도 잡곡밥을 지어 우리 집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아놨다. 한날은 밥은 그때그때 해 먹는 게 맛있다며 전기밥솥도 우리 집에 가져다 놨지만 난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다. 그러니 엄마는 하는 수없이 매번 냉동밥을 채워줬다. 내가 부탁한 건 아니지만 엄마는 그렇게 했다.


3. 다시 생일상으로 돌아와서. 급하게 차리느라 주 메뉴랄건 양념 소고기뿐이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들을 모두 소집한다. 갓김치, 열무김치, 된장깻잎, 진미채, 멸치볶음, 미역줄기가 나왔다. 모두 엄마의 손이 닿은 것들. 차려놓고 보니 그럴싸한 생일상이다. 갑자기 차린 것치곤 괜찮은 것 같다. 먼길 떠나는 이에게 든든한 밥상을 차려주고 나니 마음이 놓인다.


엄마의 밥상. 수육, 부추무침, 양파장아찌, 고구마줄기.


4. 우리 엄만 지난 30년간 한 번도 안 빼놓고 아침마다 생일상을 차려줬다. 고기반찬도 꼭 함께했다. 오빠는 갈비찜을 좋아해서 오빠 생일엔 갈비찜이 올라왔고 보통은 불고기. 잡채도 단골 메뉴다. 그렇게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고는 늘 차린 게 별로 없다고 했다. 난 반쯤 뜬 눈으로 우물우물 생일밥을 먹었다. 평소에는 아침밥을 먹지 않지만 가족 중 누군가의 생일날에는 30분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함께했다. 식사를 준비한 엄마는 아마 훨씬 더 일찍 일어났을 거다. 이뿐이랴. 생일날 저녁에는 또 만찬이 이어졌다. 저녁 메인은 닭볶음탕, 감자탕, 아구찜 등 그때그때 달랐다. 저녁엔 다 같이 모여 생일 축하 노래도 부르고 촛불도 불었다.


엄마의 밥상은 날 삼계탕, 성탄절 만찬에 대보름 오곡밥과 동지 팥죽까지 빠지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엄마의 식탁을 중심으로 모였다가, 헤어진다. 넷이 함께 살았던 그 시절에도 그랬고, 오빠가 결혼하고 내가 독립한 지금까지도 그렇다. 내가 가정을 꾸린다면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아마도 수많은 밥상들을 차리게 될 것 같다. 아무도 내게 그러라 한 적은 없지만 내가 그렇게 자라왔으니까, 그게 우리 가족을 하나로 묶어줬다고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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