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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May 19. 2018

3n세 첫 운전면허 도전기(1)

운전면허 학원은 원래 이런거야?

이른 무더위에 후덥지근했다. 기온이 아주 높은 건 아닌데 습도가 높아 꿉꿉하고 불쾌지수가 높은 날이었다. 아파트단지와 조금 떨어진 낡은 컨테이너 박스에는 '접수'와 '입학안내'가 적혀있다. 컨테이너에는 날파리와 모기가 윙윙 거렸다. 내 차례를 기다리며 서있는 동안 오른쪽 다리에 모기 한방을 물렸다. 올해 첫 공식적인 모기물림인 것 같다.


학원은 참으로 세기말스러웠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함이 있었다. 여기에 오기까지의 과정도 그랬다. 홈페이지에서 학원을 검색해보니 인근 지하철역에서 학원까지 가는 셔틀버스가 여러 대 마련돼 있었다. 퇴근하고 서울대입구역에서 셔틀을 타면 좋을 것 같았다. 몇시에 차가 있는지 물어보고자 홈페이지에 적힌 8호차 기사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서울대입구역은 이제 안 가요. 탈 거면 신림역 GS25에서 쭈욱 걸어와서 다리 건너서 타이어뱅크가 있는데, 거기 렌트카 가게 앞에서 타면 돼. 7시 5분이야. 1분이라도 늦으면 바로 출발하니까 명심하라고."


생각보다 출발 시간이 빠듯했다. 제 시각에 도착하면 셔틀을 타고 아니면 택시나 시내버스를 타야지 하며 부지런히 걷고 있었다. 7시 6분이다. 셔틀 탑승을 포기하려는 순간 전화가 울린다. 8호차 아저씨다. "아니 어디여!!!!!!! 5분에 출발해야되는데!! 빨리와!" "저 횡단보도 앞인데.. 타이어뱅크가 보여요." "타이어뱅크가 아니라 렌트카라니까 왜 거기있어 빨리 오셔야돼!" "네네 죄송합니다 얼른 갈게요" 정시가 되면 출발할 줄 알았는데 나를 기다리고 계셨나보다. 길을 건너니 노란 학원버스가 보인다. 버스에는 내또래로 보이는 여자 한명이 있었다. 버스에 타자마자 아저씨는 또 잔소리를 늘어놓으신다. "아니  학생, 이게 지금 막히는 시간이라서 1분이라도 안 기다려줘, 원래는. 아까 나올 때보니까 오늘은 그래도 좀 한산한거 같긴 하더라만 금요일 이럴 때는 말이지, 7시 50분 수업에 들어간다고 확답도 못 줘요." 아저씨는 이런류의 푸념을 한참 늘어놓았는데, 이상하게 듣기 싫지 않았다. 직장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는데도 꼬박꼬박 '학생'이라고 불러주는 것도 정겨웠고.


다행히 차가 얼마 막히지 않아 무사히 학원에 도착했다. 컨테이너 박스의 안내원 아저씨는 친절하게 시험 절차를 안내해줬다. 학과시험, 기능시험, 도로주행 시험을 거쳐야 한다고. 수업은 기본반, 향상반, 심화반이 있는데 심화로 갈수록 수업 시간이 많아지는 거였다. 안내 카달로그에는 빨간 글씨로 기본반-합격률 매우 낮음/향상반-합격률 높음/심화반-합격율 매우 높음 이라고 적혀 있었다. 기본반은 70만원, 향상반은 100만원, 심화반은 120만원가량 됐다. 70만원정도 예상하고 갔는데 막상 접수할 때가 되니 향상반쯤은 해야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수업시간과 100만원이라는 돈이 적절한가에 대해 판단할 수 없지만, 가운데 있으니 그나마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주로 그렇게 선택을 한다고 그런다. 정답이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의향을 묻는 것일 경우, 같은 문제여도 객관식으로 문제를 냈을 때와 주관식으로 냈을 때 전혀 다른 답을 한다. 객관식일 경우 비교적 평균에 가까운 선택을 하고자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문제출제자(즉 기업)들은 이런 소비자의 심리를 활용해 가격 패키지를 구성한다. 그런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마지못해 향상반을 고르려던 찰나에, 내 앞에 있는 여자는 당당하게 기본반을 골랐다. “이걸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 오, 멋져보였다. “혜원씨는 어떤걸로 하시겠어요?” 말해 뭐해. “저도 기본반으로 할게요”


친절한 아저씨는 우리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래요, 기본반도 열심히 하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어요!” 용기를 북돋아줬다. 말뿐일지 몰라도, 이상하게 그 말이 참 고맙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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