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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Jun 10. 2018

3n세 첫 운전면허 도전기(2)

아, 투머치토커와의 만남이여..

3시간의 학과 수업을 마치고 드디어 기능 수업에 돌입했다. 살면서 수없이 많은 자동차에 타봤지만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아보는 건 처음이다. 처음 조수석에 앉아 강사의 설명을 듣고 운전석으로 이동했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30년이나 살았지만 아직도 나를 가슴 설레게 하는 '처음'이 있으니까.


엑셀과 브레이크를 지긋이 밟는 것. 이건 스쿠터를 탈 때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중학교 때 처음 스쿠터 타는 법을 배웠는데, 그때 가장 중요한 건 '지긋이' 엑셀을 당겨서 앞으로 가는 거였다. 처음에는 그 지긋이의 느낌을 알 수가 없어 세게 돌려버리는데, 그럼 슝 하고 날아가서 큰일난다. 그 느낌을 기억하면서 지긋이 브레이크를 밟고 지긋이 엑셀을 밟았다. 음, 좋은 느낌이다.



2016년 12월을 기점으로 운전면허 기능시험이 어려워졌다. 나는 2016년 12월 초에 필기시험을 합격했는데, 시기가 애매하게 맞물려 쉬운 기능시험의 수혜를 받지 못한채 필기 유효기간(1년)도 만료돼 버렸다. 고로 다시 봐야한다는 말씀. 이전 기능시험은 운전대에 앉아보지 않고 유튜브로 반복학습만 하고 가도 붙을 정도로 쉬웠다고 한다.


요즘 기능시험 코스는 대강 이런 순서로 진행된다.

1. 오르막에서 3초간 정차한 뒤 출발하기 : 차가 뒤로 밀리거나 정차해야 할 위치를 벗어날 경우 감점

2. 교차로 정지선 앞에서 예쁘게 멈춰서기

3. 직각주차 : 이것만 통과해도 기능시험은 합격한 거나 마찬가지.

4. 좌회전하기 : 좌회전 깜빡이를 성실하게 넣고, 커브를 잘 돌아서 교차로를 통과하기

5. 가속구간 : 20km/h 초과해서 가속한 뒤 곧장 감속하기. 재빨리 감속하려다 멈춰버리면 감점


가장 어려운 건 직각주차였다. 다른 것들은 코스를 돌며 감을 익히면 됐지만 직각주차는 공식을 외워야 했다. 어깨선과 정해진 위치를 나란히 한 뒤 핸들을 오른쪽으로 세번 돌리기 → 왼쪽으로 한바퀴반을 돌린 다음 주차공간으로 진입하기 → 왼쪽 어깨선과 정해진 지점이 나란히 되면 오른쪽으로 핸들을 한바퀴 돌리기 → 백미러로 정해진 위치까지 온 걸 확인한 다음 후진기어로 변속 → 핸들을 왼쪽으로 세바퀴 돌려 후진 → ... 뭐 아무튼 이런 공식들을 외워서 그대로 따라하면 큰 문제는 없는데, 처음이라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그렇다.


외우세요! 외우세요! 공식을 외워야 합격합니다.


기능시험은 총 4시간이었는데, 처음 2시간 강사와 두번째 2시간 강사가 다른 것도 좀 난감했다. 두번째 선생님은 첫번째 선생님의 가르침을 부정했다. 자기한테 배워야 제대로 한다면서 핸들을 과격하게 꺾고 부딪혀도 되니 자신있게 운전하라고 했다. 첫번째 선생님은 점잖게 운전만 알려주셨던 반면, 두번째 선생님은 요즘 말로 투머치토커(TMT)였다.


"아~ 남자들만 가르치다 혜원씨같은 여자분이 오니 너무 좋네요잉. 사실 도로주행도 여자인게 훨씬 유리해. 이게 다 사람이 하는거라서 여자들이 실수하면 선생님들도 다 봐준다고. (...) 혜원씨는 키가 몇인가? (...) 실례지만 하는 일이 뭔지 물어봐도 되나잉? 서울이 직장이면 사당에서 다녀도 될텐데 광명까지 왔네. 고마워라. 내가 사당에서 일했었는데 그때 말이야 핑클 내가 가르쳤었어. 이효리랑 성유리랑. 또 누구더라, 젝키에 이재진이랑 나르샤랑.. 내가 가르친 사람들은 다 붙었지." 아, 아저씨 제발요. 그냥 운전이나 좀 알려주셔요.


 처음 운전대를 잡아 잔뜩 긴장한 상태인데 강사라는 양반은 내 옆에 앉아서 쓸데없는 소리만 늘어놓고 있었다. 뭔갈 물어보면 설명도 대충 했다. 이 자동차운전학원을 보면서 느낀건데 지역에서 참으로 많은 중장년 일자리를 창출하는 곳이다. 상담실의 직원도 그렇고, 운전강사, 관리요원 대부분이 아빠 또래의 아저씨다. 대부분은 친절하고 좋지만 가끔 이런 사람을 만나면 정말 피곤해진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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