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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Jun 18. 2018

허스토리 : 할머니, 엄마, 그리고 나

1. 딸들은 자주 엄마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아들들이 아빠의 삶에 대해 얼마만큼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딸들은 그렇다.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만큼만 사는 것도 쉽지 않겠구나' 한다. 닮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모습을 쏙 빼닮은 스스로를 보며 흠칫 놀란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을까, 친구들과 시내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엄마가 나를 시내까지 차로 데려다줬다. 교차로에 차가 멈춰서자 엄마는 그런 말을 했다. "너는 참 좋겠다. 친구들이랑 영화도 보고. 엄마도 더 늦게 태어났더라면 좋았을걸." 이상하게 그 장면이 아직까지 기억난다. 내가 크는 동안 엄마는 종종 그런 얘길 했었다.


23살에 휴학을 하고 1년동안 500만원을 모아서 첫 해외여행을 갔다. 한달간의 유럽여행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너무 설레 잠을 이룰 수 없었지만 마음 한켠이 무거웠다. 우리 엄만 아직 한번도 유럽에 안 가봤는데, 나 혼자 이렇게 가도 되는걸까. 엄마한테 그런 얘길 했더니 '난 어차피 장거리비행이 힘들어서 가지도 못해. 괜찮아'라고 했다. 당시엔 조금 안도했었는데 이제는 안다. 착한 거짓말이었다는 걸.


내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삶의 자유도다.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 생각한다. 내가 게을러서,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 상관없지만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못'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주의다. 지금까지 비교적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 적은 없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 기억도 거의 없다.



2. 22살에 결혼한 우리 엄만 이듬해 오빠를 낳았다. 아빠 직장 때문에 친구도, 친척도 한 명 없는 타지에서 어린 나이에 혼자서 오빠를 키웠다. 요즘말로 하면 독박육아지만 그 시기엔 다들 그랬다. 엄마는 오빠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엄마는 주변에 의지할 사람 하나 없던 그 시절 갓난쟁이인 우리 오빠가 유일한 위로이자 희망이었다고 한다. 엄마는 겁이 많아 집에 혼자 있는 것도 싫고 잠도 혼자 못 잤는데, 말 못하는 아기지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좋았다고 했다.


엄마는 늘 진취적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오빠와 나를 키우며 집에서 소일거리를 했고, 내가 중학교에 들어갔을 땐 동네에 분식집을 차렸다. 음식점을 해본 경험도, 주변에 도와줄 사람도 없었지만 혼자 그렇게 조그맣게 시작해서 가게도 조금 넓히고 메뉴도 조금씩 바꿨다. 그렇게 한 자리에서 16년이나 장사를 해서 아들 딸 대학까지 보냈다.


나는 엄마에 비해 많은 것을 누리며 산 것 같다. 엄마의 삶 전체를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나보다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았으리라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했을 것이고, 하기 싫은 일들을 해야 했을 거다. 얼마 전 아빠와 지방으로 내려간 엄마는 거기에 큰 가게를 차려놓고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일할 땐 열심히 하고, 쉬는 날엔 아빠와 여행을 다닌다. 오빠와 나 없이도 엄마는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참 다행이다.



3. 엄마의 삶이 어땠을까 짐작하다보면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20년을 할아버지 없이 지냈다. 너무 많은 할머니들이 남편을 여의고 혼자 남은생을 보낸다. 할머니는 언제나 할머니였지만, 지금와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고작 50대의 나이에 혼자가 됐다. 지금 우리 엄마 나이정도밖에 안 되는 거다. 요즘 70대는 노인정에서도 젊은 축에 속한다는데, 할머니는 너무 일찍 가셨다. 건강이 좋지 않으신 편이었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팠다. 한번은 심장이 너무 아프다고 일부러 서울에 있는 큰 병원까지 오셨는데, 병명은 우울증이었다.


할머니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잘은 모르겠다. 내가 지켜본 할머니의 삶은 너무나 단편적이기 때문이다. 일년에 두세번 정도 만났을 뿐이니까. 감히 단정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삶을 생각해보면 엄마는 외할머니보다는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4. 자랑할만한 얘기는 아니지만, 나는 애국심이나 국가주의에 반감을 가진 편이다. 국가주의는 특권층이 국민들을 마음대로 부리기 위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라 믿는다. 그래서 국가라는 허상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다. 사실 국가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이 존재할 뿐이지. 그런 내가 국가의 중요성을 어렴풋하게나마 깨닫는 순간은 외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나의 삶을 비교해볼 때다. 외할머니보다는 엄마가, 엄마보다는 내가 많은 것을 누리며 풍요롭게 살고 있다. 나는 전쟁을 경험하지도 못 했고, 배고픔에 허덕여본 기억도 없다. 이 모든 것은 우리나라가 예전보다 살기 좋아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5. 영화 <허스토리>를 보며 여성들의 삶을 생각했다. 나약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겪어야만 했던 고통이 너무나 절절하게 다가왔다. 약소국의 설움이 비단 여성에게만 비극이랴. 앳된 소년병들은 총을 들고 전쟁터로 떠밀려야 했다. 내 눈앞에 있는 이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수밖에 없는 곳에서 괴물이 되어야했다. 목숨을 잃는 게 그나마 나은지도 모른다. 신체 일부를 잃거나 전쟁 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남은 생을 보내야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건 불과 100년도 채 안 된 얘기다. 분명히 역사에 존재했던 사실이나 나는 항상 잊고 산다. 피해자들은 하나둘씩 역사에서 사라지고, 살아남은 이들의 기억에서도 점점 잊힌다. 영화를 보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평화가 누구의 공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해야만 하는 무엇일지에 대해서.


 



+)  <허스토리>를 보며 떠오른 뜻밖의 영화가 있었다. <더 리더>. 경비원으로 근무하며 나치에 부역한 여성 한나 슈미츠가 주인공인데, 다른 홀로코스트 영화와 달리 가해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낸 점이 흥미롭다. 전후 독일인들이 전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아래는 대학교 때 과제로 썼던 <더 리더> 리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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