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말할 것 같으면, 지독한 청개구리 심보를 가진 인간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모든 규칙들을 의심하고 불신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에 와 돌이켜 보면 그랬다. 기성세대가 응당 그래야만 한다고 정해놓은 모든 것들을 못마땅해하고, 의심하고, 나는 다를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이걸 과거형으로 쓸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비단 결혼만의 얘기가 아니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는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부터 의심하고 불신했다. 대학에 가봐야 별 볼일 없는데 내가 왜 이렇게 애써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으며, 수능시험이라는 단 한번의 테스트로 나의 정규 교과과정 12년이 평가받는다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 입시 가군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재수를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대학에 안 가고도 잘 살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했었다. 운 좋게도 나군과 다군과 합격하며 대학에 가기는 했지만 말이다.
취업은 또 어떤가. 대학에 들어가면 다들 1-2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를 했다. 토익 공부를 해서 영어점수를 따고 봉사활동을 하고 인턴을 하고 공모전에 참여하며 경력을 쌓았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이 회의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그저 학교 신문사에 몸담고 있으면서 2주에 한번씩 신문을 만들고, 전공 공부는 그럭저럭하고, 내가 좋아하는 과목만 열심히 공부했다. 다들 취업 준비를 한다는데 나는 그런 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질지가 중요한 것이아니라, 대학을 졸업한 뒤 어떤 인간으로 살아야 할지가 훨씬 중요하다고 느꼈다.
어쩌면 그것은 현실도피였는지도 모른다. 무한경쟁시스템에 진입해 경쟁을 하고, 도태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나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아’라며 스스로 피하려는 몸부림이랄까. 지금와서 그것을 무어라 해석하든, 당시의 나는 그랬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 있는 상담센터에 가서 적성검사를 하고, 1년 동안 심리상담을 받으며 나라는 인간에 대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일주일에 한번씩 상담 선생님을 만나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지금 내가 힘든 점들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현실도피와 번뇌를 거쳐 내가 하고 싶다고 느꼈던 일을 하게 되었고, 그게 기자 생활의 시작이었다.
결혼은 말해 뭐할까. 마찬가지였다. 작년에 난 30년만에 처음으로 부모님 품을 벗어나 독립을 했다. 1인가구로 생활하며 많은 걸 느꼈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익숙해지자 행복했다. 너무 행복했다. 독립된 사회 일원으로서 1인분 몫으로 살고 있다는 만족감이 컸다. 지금까지는 부모님 그늘 아래서 안락하게 살아왔다면, 1인가구가 되어 불편한 것도 많지만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삶이 좋았다. 누구에게도 신세질 필요 없고,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삶. 내가 딱 원하던 모습이었다. 먹고 살만큼의 월급을 벌어 나 한명을 먹여살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고, 친구들과 여행을 하는 삶이 너무나 좋았다. 가끔은 너무 행복해서 두렵기도 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걸까. 누가 내 행복을 앗아가지는 않을까 하면서. 그때의 내게 결혼은 리스크일뿐이었다. 이것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는걸까? 나는 지금도 충분한데, 완전하다고 느끼는데 내가 왜 결혼을 해야하는걸까? 그런 물음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런 내가 결혼을 했다. 준비 과정에서 자괴감도 많이 들었고, 이걸 꼭 해야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지금의 나는 무척이나 행복하다. 비로소 완전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참으로 웃긴 일이다. 나는 혼자 살 때도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지금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이, 내가 처한 상황에 맞게 적당히 수용하고 생존하는지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다. 어젯밤 자다가 깨서 화장실에 다녀와 따뜻한 옆 사람의 온기를 느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완전한 삶이다. 완벽이라는 말은 쓰지 못하겠지만 완전하다고 느꼈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지금 이 상태로 모든 것이 완전하고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