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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Nov 13. 2018

우울함을 떨쳐내는 작은 방법

서랍 정리를 하다 몇년 전 선물 받은 펜을 찾았다. 보석이 잔뜩 들어있는 예쁜 펜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펜이 안 나와서 서랍에 처박아 둔 거였다. 요즘 나는 가진 물건의 재발견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터라, 볼펜심을 교체해서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조사 공식 홈페이지에서 리필심을 팔고 있다. 10개씩 파는데 3만원 가까이 한다. 너무 비싸다. 웹서핑을 하다 보니 일반심을 끼워도 문제 없다고 한다. 리필심 종류가 많은 핫트랙스같은 문구점을 찾다가 너무 멀어서 포기. 회사 앞 문방구에 가보기로 했다. 보통 필요한 물건의 9할은 인터넷으로 구입하지만 이번에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블로거들이 알려주는 방법대로 아무리 해봐도 볼펜이 분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방구를 정말 오랜만에 갔다. 중년 부부가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볼펜을 내밀며 리필심을 찾으러 왔다고 하자 두 사람은 아주 적극적으로 딱 맞는 심 찾기에 나섰다. 나는 볼펜심을 교체해본적이 없는지라 강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보고만 있었다. 두 사람은 어떤 제품이 맞느냐를 두고 한참을 투닥거렸다. 마침 문방구엔 손님도 없었다. 그러더니 내 펜에 딱 맞는 심을 골라줬다.

리필심 교체를 부탁하자 사장님은 빨간 반코팅 장갑을 끼고 세심하게 심을 교체해주셨다. 이제 결제의 시간. “얼마예요?” “천원이요” 그 많은 투닥거림과 세심한 공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었다. 예쁜 볼펜이 새 생명을 얻는데 든 비용 치고는 너무 쌌다. 연신 감사하다 인사하며 천원짜리 한장을 건네고 돌아왔다.

무언가 보답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집에는 제품 리뷰용으로 사뒀던 3M 슈퍼그립 200이 하나 남아 있었다. 튼튼하고 착용감 좋고 세탁 가능하고 스마트폰 터치까지 되는 훌륭한 장갑이다. 일반 목장갑보다 10배는 비싼.(그래봐야 2000원도 안 하지만)

3M 장갑을 챙겨놓고 며칠을 미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왜냐하면 너무 우울했기 때문이다. 무기력하고 모든 게 지루했다. 평소엔 사무실에서 샐러드로 점심을 해결하지만 오늘은 울적해서 혼자 버스를 타고 가 엄청 맛있는 생선까스도 먹고 왔다. 그래도 별로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장갑을 주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문방구엔 여자 사장님만 계셨다. 쑥스럽게 장갑을 내밀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분은 너무 깜짝 놀라며 이런걸 왜 주느냐고 했다. 정말 감동이라고, 고맙다고. 나는 마땅한 핑계를 찾지 못해 적당히 둘러대다 회사가 이런 쪽이라서 제품이 있어서 드리는 거니 부담없이 받아달라 했다.(그러면서도 이게 얼마나 좋은 제품인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멋적게 인사하며 문방구를 나왔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아주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부디 사장님의 하루도 그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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