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원 Nov 03. 2015

KOTRA 한젬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기업-예술가, 오픈갤러리서 눈 맞다

한젬마를 처음만난 건 3년 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였다. 그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이하 코트라)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마련한 오픈갤러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게 됐다고 했다. 중소기업과 예술작품의 만남을 주선하는 역할이다. 가장 먼저 든 의문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코트라 같은 공기업에 그같은 영어 직함은 흔치 않은 탓이다.


그때 가졌던 의문은 3년이 지나서야 풀렸다. 5월22일 코트라 오픈갤러리에서 한젬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연인 즉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부르기도 어려운 직함은 그가 고집한 이름이었다. 애초에 코트라에서 맡아달라고 한 건 명예관장, 혹은 관장이었다.


“이름만 걸어놓는 명예관장같은 직함은 원하지 않았어요. 관장이라는 고상한 이름도 제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요. 실무에 투입돼 주체적으로 일을 하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란 이름이 거기에 딱 맞다고 생각했죠.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 피가 끓었죠”


동상이몽(同床異夢), 기업과 예술 사이에 ‘다리 놓기’


한젬마 디렉터는 코트라에 소속된 중소기업과 예술가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일을 한다. 제품에 예술작품을 활용하고 싶어 하는 중소기업들에 작품을 추천해주고, 작가들과 연결시켜주는 업무다.


한 디렉터는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미술가 출신으로 삼성 래미안 주택문화관, 진흥기업, 대웅제약, 가든파이브 등 기업의 아트 디렉팅을 도맡아 했다. 기업들과 스킨십을 해본 경험이 풍부했기에 오픈갤러리 일에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현실은 달랐다. 아트 콜라보레이션에 대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눈높이 차이가 생각보다 컸던 것이다.


한젬마 코트라 오픈갤러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여행용 가방은 제이월드인터내셔널의 아트 콜라보레이션 제품.   ©중기이코노미
“처음 코트라에 왔을 때 중소기업 대표들을 만나서 일일이 사업 제안을 했어요. 열에 아홉은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죠. ‘아, 좋네요. 그런데 나중에 할게요’라고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황이 너무 다르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됐어요. 중소기업들은 아트 콜라보레이션에 대한 절실함이 없었고, 예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게 있었어요”


오픈갤러리는 코트라 예산으로 운영되는 부서로 기업에서는 비용을 받지 않는다. 기업이 코트라에 아트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싶다고 요청하면 오픈갤러리는 작가를 연결시켜준다. 기업은 러닝개런티 형식으로 제품 판매 수익의 일정 비율을 작가에게 지급한다.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은 아니나 회사 수익에 당장 도움이 될 일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중소기업들이 머뭇거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게 등 돌리는 기업들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한젬마 디렉터는 취임 1주년을 맞았다. 시행착오를 겪고 나니 상황은 조금씩 나아졌다. 중소기업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하는 법도 알게 됐고, 코트라 법률팀을 통해 아트 콜라보레이션 계약서 양식도 만들었다. 기업과 예술가가 계약을 맺었을 때 수익 분배는 어떻게 할지, 저작권 소유는 어떻게 할지 등을 정한 문서였다.


제이월드 인터내셔널 같은 ‘패밀리’ 기업도 생겼다. 여행용가방 전문기업인 제이월드 인터내셔널은 코트라를 거쳐 아트 콜라보레이션 제품 출시하고 수출까지 했다. 처음에는 샘플만 제작했던 기업들도 하나둘씩 상용화를 결정했다. 어떤 기업은 사옥에 작가 작업실을 마련해주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명품은 소비자들이 만들어나간다”고 믿는다는 한젬마 디렉터.   ©중기이코노미


아래로는 못 가는 美感, 기업문화도 달라진다


오픈갤러리같은 ‘중매쟁이’가 필요한 건 기업과 예술가의 견해차 때문이다. 기업은 예술작품을 제품에 들어가는 디자인의 일부로 본다. 반면 작가에게 있어 작품은 피붙이나 다름없다. ‘마음’이 시키면 팔리지 않을 그림도 그려내야 직성이 풀린다. 두 바퀴의 지향점 자체가 다르다 보니 삐걱삐걱 불협화음을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기업들은 제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제품에 넣었을 때 팔리지 않을 거라면 상용화를 하지 않습니다. 무료로 작품을 쓸 수 있게 해준다고 해도요. 어떤 작품이 우리 제품과 가장 어울리는지, 어떤 작품이 소비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를 기준으로 판단하죠. 때문에 아트 콜라보레이션으로 샘플을 제작해놓고 상용화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상용화되지 않는다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샘플로 제작된 아트 콜라보레이션 제품은 해외 전시회에서 홍보용으로 활약하거나 바이어에게 선물용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한번 아트 콜라보레이션을 경험을 해본 기업은 미감(美感)이 달라진다는 것이 한젬마 디렉터의 말이다.


“사람의 감각이라는 게 위로는 올라가도 아래로는 못 내려갑니다. 기업들도 한번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제작을 해보고 나면 그 이하로는 용납을 못 하게 되는 거죠. 제품뿐만 아니라 포장이나 그밖의 사소한 것들까지요. 아트 콜라보레이션이 기업인들의 예술적 감각을 높이는데도 기여한다고 봐요”


한 디렉터는 소비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했다. 명품은 소비자들이 만들어나간다 것이 그의 주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명품은 단순히 비싼 제품이 아니라 독창성이 있으면서도 완성도를 갖춘 제품을 말한다고 했다. 아트 콜라보레이션을 거쳐 만들어진 제품도 예외는 아니다.


“오리지널과 카피는 분명히 달라요. 소비자들이 그 차이를 인정하고 비용을 지불해야 기업들도 독창적인 제품을 만드는 문화가 생길 거예요. 짝퉁만 산다면 ‘금방 카피당할 것 뭐 하러 새로운 것을 만드냐’는 문화가 만연하게 되죠. 오리지널의 가치를 인정하는 멋쟁이 소비자들이 많아져야 기업들의 제품 수준도 올라갈 겁니다”


이 글은 중기이코노미에 2015년 5월 30일자로 보도된 기사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