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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원 Oct 27. 2020

솔직히 말해서 나는, 대기업에 가고 싶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대기업에 가고 싶었다. 대학교 4학년 때의 나는 그런 말을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취업 준비를 하기에 전혀 늦은 나이가 아니었고,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나는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때의 나는 스스로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다. 주변 친구들은 1학년 때부터 영어 공부하고 스펙 쌓는데 나는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는 것 같았다. 뭔갈 하지는 않으면서 불안해하기만 했다. 기성세대들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도전하고 실패해보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보다 그때의 내가 훨씬 실패를 두려워했던 것 같다.


주변에서 취업 계획에 대해 물으면 나는 '대기업 갈 생각 별로 없다'라고 했다. 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가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나 보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었던 때라, 스페인에 가서 여행 가이드를 하겠다고 엄마에게 선언했다. 4학년 때도 취업 자리를 알아보기보단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혀 유럽 미술사 책만 들입다 읽었다. 그게 정말 즐겁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나의 도피처였다. 한국의 치열한 취업 경쟁에 뛰어드는 대신 돈은 조금 못 벌더라도 여유 있게, 좋은 것만 보며 외국 생활을 하고 싶다는 마음.  20대의 로망이었을 수도, 현실 도피였을 수도 있다. 엄마의 반대에 나는 쉽사리 꿈을 꺾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안도했던 것 같기도 하다. 새로운 도전이 두려웠는데 부모님의 반대라는 적절한 핑곗거리가 생겼으니 말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 대학시절 내내 학보사 활동을 하며 취재하고, 기사 쓰고 다녔으니 자연스럽게 인터넷 신문사에 취직을 했다. 그렇게 중소기업 언론에서 3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그러다 회사가 신문사업을 철수하면서 하루아침에 백수가 됐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지내다 직원이 5명도 안 되는 인터넷 신문사에 입사를 하게 됐다. 자유롭게 취재하고, 국회와 정부부처, 경제단체 등을 드나들며 법과 경제에 대해 공부도 많이 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 모두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었다. 대표가 돈 버는 재주가 없어 매출은 0원이었지만 자부심 하나로 일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인정받는 직원이었다. 직원이 몇 명 안 되다 보니 대표는 하루 종일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톱기사를 써내지 못하면 다음날 톱기사는 펑크가 났다. 작은 회사를 벗어나 보려고 잠시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기도 했었지만, 대표의 삼고초려에 못 이기는 척 다시 돌아왔다. 연봉을 올리고 팀장을 달아줬다. 그것이 내게는 자부심인 동시에 부담이었다. 나는 골목대장이 아니라 더 큰 세상에 나가고 싶었다. 나보다 훨씬 일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경쟁하고, 내 한계를 느끼고, 치열하게 성장하고 싶었다. 그것이 지금의 회사로 오게 된 이유다. 막상 큰 회사에 와보니 내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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