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원 Feb 15. 2016

정리해고 통보받던 날

인생의 폭풍은 정말, 아무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2년 전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평범한 날이었다. 9시에 출근해 어김없이 기사를 쓰고 있었다. 별안간 편집장으로부터 단체 문자가 왔다. 신입을 제외한 정기자들만 회사 앞 카페로 모이라고. 종종 있는 일이었다. 기강이 해이해졌다 싶으면 편집장은 이렇게 불시 소집령을 내렸다. 그때마다 편집장의 타깃이 되곤 했던 후배 C는 어김없이 궁시렁거렸다. "아~ 이제 진짜로 나 자르려나보다" 우리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카페로 향했다.


분위기가 평소와는 좀 달랐다. 편집장과 팀장의 얼굴이 굳어있었다. 약간의 침묵이 있은 뒤 편집장이 입을 열었다. 회사에서 신문사를 정리하려 한다고. 여기서 회사라 함은 우리들 월급을 주는 모회사다. 우리 신문사는 한 중견기업의 여행사업부에 소속돼 있었다. 물론 우리 매체는 여행하곤 관계가 없었다. 그냥 그러려니 했을 따름이다. 현금이 많은 우리의 모회사는 비록 적은 금액일지언정 한 번도 월급을 밀리지 않고 줬다. 인터넷 언론이지만 광고도 거의 안 달았다. 광고를 준다는 곳은 있었지만 대부분이 성인광고, 대출광고라 거절했단다. 한두 푼이 아쉬운 입장이 아니니 그런 광고를  걸어 괜스레 매체 이미지를 더럽힐 필요가 없었다. 기자들이 돈 걱정 않고 다닐 수 있다는 점에선, 좋은 언론사였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좀 달라진 거다. 자세한 내막이야 나 같은 조무래기는 알 수 없는 노릇이나 본사에서 신문사업을 지지하던 무리가 그렇지 않은 무리에 밀려났다는 것이 내가 이해한 전부다. 본사의 세력다툼에 신문사에 소속된 열댓명의 기자들의 목이 날아가게 된 거다. 이제 막 정기자 발령을 받은 신입기자, 입사 4년차인 나, 이제 막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사진기자 선배, 7년간 이 회사에서 헌신해온 개발팀장님까지.


편집장이 그 얘길 꺼냈을 때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저 멍했다. 지금 저 양반이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실감이 안 났다. 편집장은 우리 얼굴 볼 면목이 없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렇게 드라마틱한 상황 속에서도 난 별다른 감정의 동요를 느끼지 못했다. 너무 큰 일이라, 아직 내 머리가 이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게 정리해고 절차는 시작됐다. 초반에는 폐업이 완전히 확정되지 않았던 터라 예전과 다름없이 일을 해야 했다. 여러 차례 서로 입단속도 시켰다. 이 얘기가 밖으로 새어나가면 아주 곤란해진다고. 그러나 사람이 많다 보니 어찌 저찌 얘기는 새어나가기 마련인 거다. 며칠 안 돼 다른 매체의 정보보고에서 우리 회사가 이런 상황에 놓여있다는 얘기가 나왔단다. 우리가 정보보고 대상이 될 정도로 관심의 대상이었던가? 이상한 기분이었다.


출입처에 가면 취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다 일찍 빠져나왔다. 조만간 본의 아니게 헤어질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게 불편했다. 국제갤러리에 간 날이었던가, 취재 도중에 나와 정독도서관에 갔다. 1년 반 동안 일주일에 한번 이상 오가면서도 한 번도 그곳에 갈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거기서 10분쯤 산책한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일할 땐 늘 쫓기는 기분이었다.


그날의 사진이 남아있구나. 4월 10일, 정독도서관 벤치에 누워서.


정독도서관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예쁘게 피어있었다. 감탄을 연발하며 왜 이제 여기에 왔을까 싶었다. 뭐가 그렇게 바빴다고.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거겠지. 혼자 도서관 주변을 저벅저벅 걷다 벤치에 앉았다. 뭔가 부족하다 싶어 벤치에 누웠다. 누워서 본 하늘은 벚꽃으로 가득했다. 바람이 불 때 마다 벚꽃이 나풀나풀 떨어졌다. 내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싶다가도 사무치게 아름다운 풍경에 행복했다. 이상한 경험이었다.


또 언젠가는 취재가 끝날 즈음 혼자 빠져나와 브런치 집엘 갔다. 학자금 대출 갚는다고 그런 사치 한번 부려본 적 없었는데, 그날은 아무렴 어떠냐 싶은 거다. 내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데 만 원짜리 브런치 한번 먹는다고 큰일 나지 않겠구나 싶었다. 오믈렛과 커피세트가 만원인가 그랬다. 오른손엔 포크, 왼손엔 칼을 쥐고 사이드로 나온 감자를 썰어먹으며 이런 식사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묘한 해방감도 들었다. 앞으로 뭐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부터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스물세 살에 은행에서 청원경찰을 할 때 열 살 많은 과장님이 다정하게 말씀하셨었다. 혜원아, 살다 보면 정말로 뜻하지 않게 닥치는 시련들이 많아. 인생은 그 시련을 맞고, 극복하는 일의 반복이지 싶어. 스물세 살의 나는 과장님의 얘기를 내 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일은 정말 운이 나쁜 누군가에게 생기는 일인데 과장님 인생에는 그런 일들이 많았는가 보다, 라며 진심으로 안타깝게 여겼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살다 보면 정말 뜻하지 않은 일들이 날벼락처럼 쏟아지기도 한다는 걸. 정말로 평범한 오늘 같은 날에. 그리고 그 고난이 영원히 나를 괴롭히지는 않는다는 것도 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온 힘을 다해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