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나의 브래지어 이야기

by 일곱시의 베이글

브래지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by. 콜린


항상 우리 주변에 있지만 입 밖으로 꺼내기 금기시되는 단어들이 몇 개 있다. 난 그중 하나가 브래지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평소 성격이 활달한 친구 하나가 브래지어 이야기를 꺼냈다. 그 애는 큰 소리로 "브래지어를 차고 있으면 가슴 모양이 이뻐진대. 그래서 난 밤에 잘 때도 차고 자"라며 자신만의 팁을 들려주었다. 나는 '내가 책에서 읽었던 거랑 다른데?'라고 생각하며 반박할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버스 앞자리에서 자는 줄 알았던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 그 애에게 다가오더니 "넌 애가 무슨 그런 얘기를 하니?"라며 조용히 하라고 했다.


여고였기 때문에 버스에는 기사님 빼고는 여고생들 밖에 없었고, 담임 선생님조차 여자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화들짝 놀라며 그 애를 나무랐다. 당시 선생님 말을 잘 듣던 나는 브래지어 이야기는 남 앞에서 하면 안 되는 거구나, 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다.


그 영향 때문인지 여전히 나는 여자들끼리 브래지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언제나 조금은 부끄럽고 은밀한 느낌이 든다. 남들이 듣지 못하게, 조심스럽게, 우리끼리만 몰래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 브래지어를 찼을 때의 답답함만큼이나 그걸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도 나를 답답하게 만든다.


브래지어가 수많은 사람을 죽인 볼드모트도 아니고, 여자들이 매일 보고, 매일 차고 다니는 속옷인데 대체 왜 편하게 말할 수 없는 건지. 만약 과거로 돌아가 브래지어에 대해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면, 그 친구에게 내가 아는 정확한 정보를 공유해 줬을 텐데. 브래지어 오래 차고 있으면 유방암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안 그래도 더운 여름에, 브래지어까지 차느라 힘든데, 말이라도 좀 편하게 할 수 있는 세상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윗 몸탱이를 꽉 죄고 있는 그것

by. 오로라


1. 처음 브래지어를 착용했을 때 얼핏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길거리에 많은 여자들이 이 고통을 다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다고? 몸통을 옥죄이며 숨쉬기가 불편한데 안 할 수도 없는 그것을 앞으로 평생 해야 한다고?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말에 자주 반항적 태도였던 터라, 더욱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왜 내가 여자로 태어났단 말인가!


2. 그러던 내가 매일 아침 화장을 하며 자연스럽게 그것을 착용하고 있다. 이제는 밖으로 나갈 때 없으면 안 될 필수품. 와이어가 있는 브래지어부터 집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노 와이어 브래지어까지, 다양한 색깔이 서랍장에 놓여있다. 후-


3. 본격적으로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처음에는 샤워조차 하지 않았다. 회사와 집의 경계선이 없었고, 일에 집중하는 게 어찌나 힘들던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재택 루틴을 세웠다. 매일 아침 샤워를 하고, 적당한 근무 복장(그래 봤자 티셔츠와 반바지임)을 갖춰 입으면서 안 하던 브래지어도 착용한다. 안 하자니 자꾸만 모양이 쳐지는 것 같아서;


4. 브래지어를 하든 하지 않든 가슴이 처지는 것과 무관하다고들 하는데, 여간 믿기지가 않는 걸. 중력의 법칙에 따르면 '자고로 무거운 건 내려가는 법'. 나이가 먹을수록 내려가는 것만 같아서, 노와이어라도 하루의 반 이상은 차려고 한다.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고 싶은 요즘이다 ^^ (퇴근 이후는 벗는다 키키)


5. 사실 난 브래지어에 대해 할 말이 딱히 없다. 이미 가슴은 있고, 받쳐줄 브래지어가 필요하니까. 그렇다고 용기 있게 안차고 다닐 것도 아니니까.


6. 이쁘고 딱 맞는 브래지어를 착용하면 기분이 조크든요-

옷장 속에 2주 동안 갇혀있던 꽃무늬 옷, 네게 자유를 주리라!(본문 내용과 무관)

내일은 오랜만에 사무실로 출근한다. 사다둔 꽃무늬 옷을 드디어 입는다.





노브라의 즐거움

by. 제니

28살 여름 회사를 그만두고 북유럽 여행을 갔다. 처음 핀란드에 도착했을 때 신기했던 건 여자들의 옷차림이다. ZARA에서 파는 근본 없이 파인 옷들을 대체 누가 사 입나 했는데, 바로 거기에 있었다. 입은 듯 만 듯한 상의에 짧은 반바지를 입은 여자들이 아주 많았는데,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살집이 있는 사람도 아무 거리낌 없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다는 거였다.


남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예 상의를 탈의한 채 백팩을 메고 가는 남자도 있었다. 볕이 좋은 날에는 모두들 공원에 나와 헐벗은 채로 일광욕을 했는데, 어떤 여자는 미술관 앞 잔디에서 상의를 모두 탈의한 채 하늘을 향해 누워있었다. 내 눈을 의심하며 몇 번이고 힐끔힐끔 쳐다봤는데 거리에 있는 사람 중 누구도 그 여자를 신경 쓰지 않았다. 문화 충격. 몸에 대한 인식이 정말 다르구나 싶었다.


덕분에 나도 용기를 얻어 한국에서는 입지 못했을 옷을 자유롭게 입고 다녔다. 노브라로 다니는 사람도 많아서 나도 그렇게 했다. 해외여행에 가면 제일 좋은 점이다. 그곳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며 한국인도 거의 없고. 내가 브라를 하든 말든, 어떤 옷을 입든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 단절이 주는 자유로움이 좋다.


나는 가슴이 큰 편이 아니라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도 티가 많이 나지 않는 편이다. 물론 유심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겠지만 누가 내 가슴을 그렇게 빤히 들여다볼까. 그럼에도 집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늘 브래지어를 하고 있다. 사회 통념상 브래지어를 하는 것이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다만 와이어가 있는 브라를 한지는 5년도 넘은 것 같다. 유니클로의 와이어리스 브라를 접한 이후로 와이어 있는 브라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와이어란 호 형태의 둥그스름한 철사로 가슴을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나는 뭐 딱히 받쳐줘야 덩어리도 없는데 (..) 십수 년간 그 불편한 브라를 하고 살아왔다.


유니클로의 와이어리스 브라는 과장 조금 덧붙여서 잠잘 때도 할 수 있을 정도로 편하다. 그거보다 더 편한 건 스포츠 브라. 이건 거의 민소매러닝 수준으로 편해서 잘 때 해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요즘 재택근무를 하거나 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는 스포츠 브라를 착용하고 있다. 물론 안 하는 게 제일 편하긴 하지만 집 앞 산책을 나가거나 마트에 갈 때마다 브라를 입었다 벗었다 하는 게 더 불편하기 때문이다.


출근길에 유난히 자유롭고 상쾌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브라를 안 하고 나온 날이다. 다시 브라를 하러 집에 갈 필요까진 없고, 적당히 잘 숨기며 하루를 보낸다. 겉옷이 두꺼운 겨울에는 일부러 안 하고 갈 때도 있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어차피 옷을 여러 겹 입으니 티가 잘 나지 않지만 몸은 한결 가볍다. 왠지 나 혼자만의 비밀이 생긴 것 같아 즐겁기도 하고.




노브라 10년, 나도 젖꼭지는 부끄럽다

by. 놀부


브라자 안 하고 산지 10년이 넘었다. 회사 다닐 땐 겉옷으로 가리고 대일밴드로 가리고 스카프로 가리고 다녔다. 브라자를 안 했을 때 나의 젖꼭지를 보고 상대가 당혹스러워하는 걸 보는 거 자체가 내게도 곤혹스러운 일이다. 젖꼭지는 죄가 없다. 여성의 젖꼭지를 성적 대상화하지 말라고 탈브라족들은 말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나부터도 브라자 안 한 여성들의 젖꼭지가 거슬리는데 탈브라라는 개념이 공산주의만큼 무서운 세대들에겐 얼마나 가혹한 것이겠나.


그러니까 나도 요즘처럼 티셔츠 한 장 입고 지내는 나날 중 잠시 쓰레기를 버리러 내려간다거나 집 앞 슈퍼에 가는데 도저히 브라자를 하고 싶지 않을 땐 나름대로 괜히 "어유 추워"하며 양팔로 가슴을 감싸며 다니거나 등허리를 아치 모양으로 수그려서 가슴팍을 최대한 티셔츠 안에 감싸 넣는다. 하지만 온갖 수를 다 써도 기침과 사랑을 감출 수 없는 것처럼 젖꼭지 녀석의 존재감은 어마무시한 것이라 어떻게든 드러나기 마련이다.

브라자는 하기 싫고 사회적 인간으로서 남들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젖꼭지를 가리며 지내는 방법을 탈브라 10년째 고민하는 중이다. 갈등을 두려워하고 귀찮고 불편한 건 지옥불에 빠지는 것만큼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이 브라자 없는 사회에 일조하는 방법은 이런 것뿐이다. 아주 온건하고 배려 넘치는 방식으로 브라자를 안 하면서도 나의 젖꼭지를 숨기는 것.


젖꼭지가 성적으로 어쩌구 저쩌구해서가 불편한 게 아니라 그냥 젖꼭지는 그런 거다. 원래 거기에 있는 거 알고는 있는데 유난히 툭 도드라지면 니가 왜 거기서 나와하며 당황스러워지는 존재. 있는데 없는 존재. 아니 이 말이 없어도 된다는 건 아니고 있는데 잘 숨어있는 존재. 그냥 좀 웃기다고 해야 할까. 젖꼭지 두 개가 나란히 균형감 있게 상반신의 긴장감을 형성한 걸 보는 것도 웃긴데 그 균형이 묘하게 무너진 사람의 젖꼭지를 보는 것도 깔깔댈만한 일이다.


여자만이 아니고 남자 젖꼭지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이. 젖꼭지에 대한 고민은 사실. 탈브라를 하는 여성만의 것이 아닌. 원래부터 브라자가 없었던 남성들의 은밀한 고민이기도 한데 그동안은 남자가 어디 무슨 젖꼭지 타령!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말을 쉽게 꺼낼 수가 없었던 거지. 그러니까 말하자면 젖꼭지에 대한 사회적 불편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나처럼 배려 넘치는 탈브라족도 많아져야 한다 이겁니다. 끝.



06학번이 돌아왔다 는 30대 여자 4명이 매주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뉴스레터입니다.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싶다면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ep1. 나의 재택근무 원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