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출근

by 일곱시의 베이글

작은 이삿짐 박스 두 개. 5년이라는 세월에 비하면 단출한 짐이다. 박스를 택시 뒷좌석에 싣고 집으로 가는 중이다. 사무실 이사와 여러 번의 층 이동으로 짐을 조금씩 줄여서 생각보다 챙길 게 별로 없다. 내게도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이 회사에 다니며 정말 많은 이들을 배웅했었는데, 오늘은 내가 그 주인공이다.


고민의 시간은 길었지만 다짐을 입밖에 내고나면 그때부터 시계는 빠르게 움직인다. 마치 나를 위해 모두 준비돼 있었던 것처럼 퇴사 절차가 진행된다. 아직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동료들도 믿기지 않는다고 하고, 나조차도 얼떨떨하다. 내일이라도 다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일 얘기를 하고 점심메뉴를 고민할 것만 같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은 없다. 이 회사에서 동료라는 이름으로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오늘로 마지막이다.


실감이 잘 나지 않다가도 명함이나 이름표 같은 것들을 보면 감상에 젖는다. 2016년에 대리로 입사해서 올해 과장을 달았다. 지금 내 책상엔 과장 이름표가 걸려 있지만 서랍 속엔 대리 이름표도 여전히 남아있다. 떠날 때가 되면 이 모든 것들이 덧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의 이름 뒤에 대리니, 과장이니 하는 이름표를 붙이는 건 우리끼리 정한 규칙일 따름이고 이곳을 떠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나면 나를 얼어붙게 만드는 대표도, 사업부장도 회사에서만 커다란 존재일뿐, 건물을 벗어나는 순간 그저 50대 아저씨 한 명일 뿐이다.


내 선택에 의해 변화를 맞는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통보된 정리해고는 무기력함과 슬픔을 주지만, 마음이 편한 구석도 있다. 사측이 사업 철수를 결정해 거기에 따랐을 뿐이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동시에 책임질 것도 없었다. 내 결정이 아니었기에 후회할 일도 없다. 그러나 자발적 퇴사와 이직은 많은 고민을 낳는다. 이 결정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지금 몸담고 있는 곳에 큰 불만이 없고 조직 내에서 인정받고 있을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복덩이를 발로 차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것은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답을 줄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고, 역설적이게도 변화를 결정해야만 이것이 옳은 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결단을 내리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새 공간에 나를 내던져 보기로 결정했다. 자, 이제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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