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에도 주 100시간 일하는 사람이 있다

by 일곱시의 베이글

월요일 오전 11시 30분. 전화벨이 울렸다. 나의 담당 파트너(일반 회사에서는 본부장급의 임원)였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이 선생, 내가 지난주에 ㅇㅇ 프로젝트 지원 나가라고 얘기 안 했었나?"


"예, 말씀 없으셨는데요."


"아.. 내가 메일을 써놓기만 하고 보내기 버튼을 안 눌렀네. 미안해요. 이번 주 1주일만 그 프로젝트 지원해 주세요. 프로젝트 팀장한테 얘기해뒀어요. 아마 만만치 않을 거야."


우리 본부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프로젝트였다. 입사 전 워크숍에서 내 옆 자리에 앉은 동료가 그 프로젝트 담당이었는데, 6개월간 새벽 3시에 귀가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다른 프로젝트로 옮긴다고 했다. 그 프로젝트만 꼭 피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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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념하고 있던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프로젝트 팀장이었다.


"점심시간 다 되었으니까, 천천히 식사하시고 6층 회의실로 오세요. 우리도 아직 안 먹어서요."


알았다고 하고 12시 30분쯤 회의실로 갔다. 미리 가서 앉아있으려 했는데 다들 아직 자리에 있었다. 벌써 먹고 온 건가 싶었는데 배달음식이 왔다. 다들 한 마디도 안 하고 제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노려 보며 밥을 먹었다.

근황을 들어보니 보통 새벽 2-3시쯤 퇴근 중이라고 한다. 주말에도 출근하고, 이틀에 한번 집에 들어가는 일도 있다고 한다. 다들 나의 이전 프로젝트에 대해 물어보길래 밤 10시, 늦으면 11시쯤 퇴근했다고 답했더니 모두들 부러움의 눈초리를 보냈다.


"10시에만 집에 가도 정말 좋겠다. 집에 가서 운동도 하고, 넷플릭스도 보고, 얼마나 좋을까” 밤 10시 퇴근이 부러움의 대상이라니, 이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주 52시간은 다른 나라 얘기다.


컨설턴트에겐 시간이 없다. 아무도 새로 온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차근차근 알려주지 않는다. 알아서 적당히 눈치로 때려 맞추어 지난 몇 개월간 일했던 것처럼 해야 한다.


"혜원 선생님, 우선 여기 PPT에 데이터 다 고쳐야 하니까 엑셀 피벗에 뽑아놓은 국가별 캠페인 기간, 이전 기간 매출 보시고 다시 입력해주세요."


프로젝트 폴더를 보니 엑셀 파일이 20개쯤 있고, 각각의 파일엔 10개씩 시트가 있다.(최종_최종, 진짜 최종, master, raw, total,...) 뭘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글로벌 프로젝트라 모든 자료는 영어로 되어있다. 다들 바쁘게 일하는데 물어볼 분위기도 아니다.


조용히 옆에 있는 대학생 인턴에게 물었는데, 한국말이 조금 어색하게 들린다. 외국에서 계속 살다 한국에 온 지 몇 년 안 됐다고 한다. 한국인이 쓰는 영어 발음이 아니라 진짜 외국인 발음이라 단어도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귀를 쫑긋 세우고 시키는 대로 자료를 고쳤다.

밤 12시가 되었다. 프로젝트의 리더인 PM은 우리들에게 업무를 주고 집에 갔다. 나도 짐을 싸서 동료들에게 먼저 가보겠다 하고 나왔다. 다음날 물어보니 2시쯤 퇴근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수요일 밤 9시다. 나는 지금 시각에 퇴근하는 것을 감사하게 되었다. 이렇게 일찍 집에 가도 되나 싶다. 다른 팀원 5명은 아직 사무실에 남아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맡은 구역을 끝냈으니 나왔다. 내 프로젝트도 아니고 1주일간 지원을 나온 거라, 할 일 마쳤는데 자리를 지키고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직 수요일인 게 믿기지 않는다. 이 프로젝트를 같이 한지 2주는 된 것 같은 게 고작 3일 차라니.. 회사에는 우리 말고도 많은 동료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오늘은 내가 일찍 퇴근해서(9시에) 마음이 너그러워서인지, 그런 동료들을 보며 이렇게 열심히 사는 청년들이 많구나 감탄했다. 주 52시간제가 준수되는 회사에 계속 다녔다면 아마 나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을 것 같다. 2022년에도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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