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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Nov 30. 2022

원수에게 추천하고 싶은 시험, 공인중개사

님아, 그 개미지옥에 발을 들이지 마시오

직장인 수험생의 하루는 퇴근하고부터 시작이다. 회사 일을 마치고 스터디카페로 달려간다.


제33회 공인중개사 합격자 발표가 났다. 작년에 1차 시험 합격, 올해 2차 시험까지 합격해야 최종 합격이다. 시험을 마치고 지난 2년을 돌이켜 보며 과연 이 시험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부동산 중개 현업에서 중개보조원으로 일하면서 개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 시험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생업을 위해 반드시 따야 하는 자격증이므로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문제는 '경험 삼아 한번 따 볼까'하는 대다수의 경우다. 은퇴를 한 뒤 인생의 2막을 준비하며 시험 삼아 한 번 준비해 볼 수도 있고, 직장생활에 매너리즘에 빠진 직장인이 활력을 얻기 위해 시험을 봐 볼 수도 있고,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부동산업계에 관심을 가지고 준비해 볼 수도 있다. 분명한 목적 없이 준비하면 중도에 포기할 확률도 높고,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시험이다.


시험의 범위가 굉장히 넓다. 준비된 교재를 처음부터 끝까지 1회독을 하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교재 기준으로 보자면 공부해야 하는 과목은 총 6개 과목이다. 부동산학개론, 민법, 공법, 공인중개사법, 공시법(지적법/등기법), 세법. 특히 공법 같은 경우 범위가 매우 넓은데 시험에 나오는 문제는 일부라, 공부 효율이 떨어진다. 공법 첫 시간부터 교수가 100점 만점에 55점 맞는 걸 목표로 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공부를 하다 보면 내가 이걸 꼭 해야 하나 라는 고민이 드는 순간이 정말 많다. 직장을 다니면서 준비했기에 절대적인 공부 시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고, 야근이 잦은 시즌에는 공부는 못하고 불안해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시험은 일 년에 단 한번뿐이다. 한 번 미끄러지면 또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올해는 작년과는 다른 절박함이 있었다. 작년에는 경험 삼아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안 되면 말지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1차 시험을 합격했다. 1차 시험을 합격하면 이듬해에 한해 1차 시험 면제권이 주어진다. 이듬해에 2차 시험을 합격하면 최종적으로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고, 떨어지면 1차 시험 면제권이 사라진다. 그다음 해에 1차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올해는 무조건 합격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다.


작년에 시험 준비를 하면서 다짐한 게 있었다. 올해는 이직하지 말고, 일 벌이지 말고, 공부에만 집중하자는 거였다. 그러나 올해도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6월에 회사를 옮기는 큰 변화를 감행했다. 게다가 워라밸이 박살 나기로 유명한 컨설팅 업계에 발을 들였다. 처음 해보는 직무라 배울 것도 많았고, 조직문화도 생소했으며, 야근과 출장도 잦았다. 9월까지는 제대로 공부를 못했다. 퇴근하면 잠자고 출근하기 바빴고, 출근길에는 인강을 틀어놓고 버스에서 잠을 잤다. 그게 공부가 되었을 리 만무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뭔가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차 합격의 경험이 2차 때는 오히려 독이었다. 1차 때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몰랐기에 정말 시키는 대로 했다. 인강도 기초(8주) - 기본(8주) - 심화(10주) - 기출문제(8주) - 문제풀이(8주) - 동형 모의고사(2주) - 마무리 특강(1주) 다 들었고, 문제집도 빠짐없이 풀었다. 9월에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는데 10월 말에 무난한 점수로 합격했다. 올해 8월까지 일이 바빠 제대로 공부를 못하면서도 '9월에 하면 되지 뭐' 했다. 막상 9월이 되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해보니 아니었다. 2차는 1차보다 과목이 2배로 늘었고, 모든 과목이 암기 과목이라 공부를 훨씬 더 많이 해야 했다.


시험 직전 일주일, 과감하게 5일간 연차를 쓰고 아침 일찍 스터디카페로 향했다.

마지막 10월 한 달은 휴직을 할까 고민했다. 업의 특성상 일반 회사보다는 휴직이 허용되는 편이라 그것도 선택지 중 하나였지만, 결국 휴직까지는 하지 않고 시험 전 일주일간 휴가를 썼다. 스터디 카페에 처박혀서 하루에 15시간씩 공부를 했다. 간간히 한숨 돌리려 산책을 하며 인생무상을 느꼈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걸까, 이걸 합격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이번 시험만 끝나면 진짜 대충 살아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시험 하루 전 날. 중개사법은 암기를 마쳐서 자신이 있었고, 공시세법도 어느 정도 된 것 같았다. 문제는 공. 법. 체계도를 보고 문제를 풀어보는데 여전히 머릿속에 체계가 잘 안 잡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3과목 평균 60점을 넘어야 하며, 한 과목이라도 40점을 넘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불합격이다. 2차 시험에서 ‘공포의 과목’이라 불리는 공법이 과락 유발자다.


대망의 시험 날. 1교시 공법을 풀며 허탈해서 웃음이 났다. 교재에서 한 번도 보지도 못했던 문제들이 수두룩했다. 이건 내가 일주일간 공부를 더 했다고 풀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 위주로 계속해서 반복했는데 그 중요한 것에 없던 문제들이었다. 공법으로 수험생들을 걸러내려고 작정했구나 싶었다. 만약 이번 시험에서 떨어진다면 공법이 40점을 넘지 못해 떨어졌을 거라 생각했다. 다행히도 중개사법은 비교적 쉽게 출제되었고, 중개사법으로 공법 점수를 커버할 수 있었다.


시험 직후 가채점 결과 1점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딱 60점이었다. 최종 발표가 나기까지 불안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젯밤, 합격자 발표를 하루 앞두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가채점 결과 60점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라 혹시라도 마킹 실수를 하여 불합격을 하면 어쩌지 걱정이 되었다. 지금까지 공부해온 2년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보다도, 떨어지면 1년을 더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에 앞이 깜깜했다. 놀아도 노는 게 아니고, 웃어도 웃는 게 아닌 수험생활이다.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든 생각은 그냥 합격 안 해도 좋으니 불합격도 안 했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생각이었다. 합격해서 느낄 기쁨이 10 정도라면, 불합격으로 인해 느낄 좌절감이 1000 정도 될 것 같아서다. 그냥 시험 안 본 걸로 치고, 합격도 불합격도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베갯잇을 적시며 잠이 들었다.


내가 이 시험을 두고 '원수에게 추천하고 싶다'는 다소 극단적인 표현을 쓰는 이유는, 한번 시작하면 끝맺음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비단 이 시험뿐 아니라 공무원 시험 등 여타 시험도 마찬가지겠지만 낙방을 할 때 한참 점수가 모자라면 포기라도 할 수 있지만 어느정도 공부를 하면 60점 언저리 점수를 맞게 된다. 2차 기준으로 보면 300점 만점에 180점을 넘어야 합격인데, 많은 탈락자들이 170점, 175점 등을 맞는다. 공인중개사 강의를 하는 교수님 얘기에 따르면 복수정답으로 인해 한 문제가 정답으로 인정되면 약 2천명 정도가 추가 합격을 한다고 한다. 그만큼 합격점에 걸린 인원들이 많기 때문에 아깝게 떨어진 사람들은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시험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 시작할 땐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해볼까' 했지만 나갈 땐 그러기가 어렵다. 1~2년 집중해서 공부하지 않으면 장수생이 되고, 몇년 간 수험생 생활을 하는 개미지옥에 빠지게 된다.


오늘 합격자 발표가 났고, 나는 다행히 합격을 했다. 당장에 써먹을 자격증은 아니다. 언젠가 개업을 해서 공인중개사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공부하면서 부동산 투자와 실무적인 부분을 익힐 수 있는 점도 있었다. 그럼에도 다시 하라면 나는 못할 것 같다. 공부를 할 때 즐겁고 보람차고 기쁜 순간들도 많았지만, 시험이 임박했을 때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생각하면 도저히 엄두가 안나는 일이다. 수험 생활을 해보면 겸손해진다. 공인중개사, 동네 아줌마도 아저씨도 있으니 개나 소나 따는 자격증이라고들 생각한다. 주변에 많이 보이니까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내가 직접 해보면 그렇게 이야기할 수가 없다. 공부해야 할 것도 많고, 여전히 합격률은 20%대다. 5명 중 4명는 떨어진다. 비단 공인중개사만의 얘기랴, 모든 수험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응원과 격려를 보내게 된다.


작년에 1차 시험이 끝나고 쓴 글을 보면 그래도 그때는 희망찼던 것 같다.

https://brunch.co.kr/@wonish/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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