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유치 못 해도 VC 두드려라”
“중소기업들이 열심히 해도 어려운 이유는 한만큼의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입니다. 건전한 시장환경만 조성된다면 중소기업도 충분히 사업할 만 합니다”
한국외대 글로벌경영대학 경영학부 조준서 교수는 ‘대기업만 하기 좋은’ 한국사회에 쓴 소리를 던졌다. 대기업들이 협력업체에게 횡포를 부리고 버젓이 기술을 빼 가도 정부에서는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할 공정거래위원회도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공정위 솜방망이 처벌…“규제 가이드라인 필요”
“정부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이 중요하다고 말만 할 뿐 진짜 상생이 무엇인지는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정위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대등한 관계에서 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명확한 방침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대기업에 대한 규제와 단속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아직은 많이 미흡하다고 봅니다”
대기업에 대한 공정위의 솜방망이 규제는 국회나 시민단체에서도 꾸준히 제기해온 문제다. 불공정 행위에 대한 과징금이 지나치게 적은 것은 물론이고 과징금을 부과해놓고도 감면해주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공정위가 기업에 과징금 통지서를 하루 늦게 보내는 바람에 처분 시효가 지나 70억원의 과징금을 못 받게 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조준서 교수는 “공정위의 과징금 처벌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지만, 유일한 금전적 제재 수단인 과징금이 지나치게 낮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미국 같았으면 이미 회사가 파산했을 법한 범죄를 저질러도 한국은 과징금만 내면 끝이다. 지금 수준의 과징금은 사실상 효과가 없다고 본다”면서 “법을 위반한 기업이 부담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과징금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도 한때는 “‘갑’을 좋아했었다”고 했다. 뉴욕대학교와 러트거스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친 그는 뉴욕 투자은행에서 근무했고, 삼성SDS에도 몸을 담았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IT 벤처기업들을 지근거리에서 바라보면서 말로만 듣던 갑의 횡포를 수차례 목격했다. 기술을 빼간 대기업과 뺏긴 중소기업이 협상하는 자리에 몇 차례 동석한 적이 있는데, 말만 합의일 뿐 사실상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대기업도 처음부터 불공정거래를 하겠다며 시작하는 건 아닙니다. 협력업체와 거래를 하다 수익이 목표치에 못 미치면 성과를 채우기 위해 이른바 ‘갑질’을 시작하게 되는 겁니다. 협력업체에게 과도한 요구를 해서 그만큼의 수익을 끌어오는 거죠. 그래서 처음엔 3:7이었던 대기업과 협력업체의 수익 배분이 나중에는 7:3이 돼 있기도 합니다. 협력업체에서 항의하면 ‘거래하기 싫으면 말라’는 식입니다”
협력업체의 소프트웨어 기술을 그대로 제품으로 출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뻔히 보이는 범법행위지만 법정에 가면 오히려 불리해지는 것은 중소기업 쪽이다.
“중소기업이 장기간의 소송을 거쳐 권리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대기업에서는 소송 시간을 질질 끕니다. 중소기업은 소송을 오래 끌고 갈 여력이 없습니다. 계속하다간 기업 자체가 존폐위기에 놓이게 되죠”
“해외 벤처투자 손쉽게 받도록 정부가 다리 놔 줘야”
한국 중소기업들이 해외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한국은 투자환경이 취약한 편입니다. 적은 금액을 받는데도 많은 조건들이 따라붙죠. 정부 지원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정부 지원사업에서 1억원, 신용보증기금에서 5억원 가량을 지원받는 게 전부인데, 사업을 확장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죠”
그러면서 조 교수는 사물인터넷 사업을 영위하는 A 벤처기업의 사례를 들었다. 그에 따르면 A기업은 한국에서 투자 유치를 원한만큼 받지 못하자 미국 실리콘밸리로 눈을 돌렸다. 직원이 6명에 불과한 A사는 핵심 기술만으로 2000만달러(약 220억원) 유치에 성공했다. 한국은 제품·서비스의 80%가 만들어져야 투자하는 반면, 미국은 20~30%만 돼도 발전 가능성을 보고 과감하게 투자한다는 것이 조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투자를 유치하지 못하더라도 해외 투자회사에 노크를 해보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성장 가능성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해외 투자회사들이 돈 대주기를 꺼린다면 사업 방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주변 벤처기업들이 자금이 필요하다고 하면 저는 외국에 나가 투자를 받으라고 합니다. 사실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압니다. 일차적으로 외국어 장벽도 있고 현지에 나갈 여건이 되지 않는 기업들도 많죠. 그래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부 차원에서 한국 기업이 해외 투자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놔줘야 한다는 겁니다”
한국에선 멀고도 힘든 ‘제2의 저커버그 키우기’
십 수 년째 경영학부에 몸담고 있는 만큼 청년 기업가 양성에도 관심이 많은 그다. 조 교수가 강의하는 4학년 과목 ‘IT경영 컨설팅’은 학생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단다. 시장조사부터 시작해 기술 분석, 사업계획서 작성, 마케팅 전략 수립, 재무제표 작성 등 기업경영에서 필요한 전 과정을 직접 해보는 수업이다.
“일단 수강신청을 했다가도 어떤 수업인지 알고 나면 빠져나가는 학생들이 절반입니다. 스펙 쌓기나 취업에는 직접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에서죠. 다만 창업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무척 열의를 보입니다. 실제로 제 수업을 들은 학생들 중 창업을 한 사례도 몇 있고요”
대학에서 강의 중이지만 기업가로 성공하기 위해선 꼭 대학을 졸업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미국에서 성공한 CEO는 대학교에서 무언가를 배워서가 아니라 이미 학창시절부터 준비를 해왔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셋 모두 대학교 중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는 하버드대학교 재학 중 사업에 뛰어들었고 스티브 잡스도 대학을 다니다 집안사정이 어려워져 그만뒀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요원해 보이는 얘기다.
“한국 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취업 걱정과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창의력을 키우고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죠. 최근 정부에서 진행 중인 청년 창업 활성화 정책은 큰 틀에서 볼 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다만 기술 관련 창업들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만큼 장기적인 지원책이 필요합니다”
중기이코노미에 2015년 3월 28일 자로 보도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