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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Dec 03. 2015

안 팔리면 작품 파기하겠다는 미술가들

인사미술공간 <1시 방향의 저글링떼>展

전시 부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참다못한 신진작가들이 강력한 행동 개시에 나섰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이 주최하는 <1시 방향의 저글링떼>展이 지난 8일부터 서울 원서동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해 아르코미술관 전문가 성장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신진작가 19명과 독립 큐레이터 4명의 결과 보고 전시회다.


이번 전시가 유독 화제를 모으는 이유는 전시 마지막 날까지 판매되지 않은 작품은 모두 파기하겠다는 파격적인 선언 때문이다. 작가들이 애써 창작한 작품을 팔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기한다는 발상이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매체가 다른 만큼 파기의 방식도 제각기다. 회화 작품의 경우 흰 물감으로 작품을 덮고 뜨개질 설치 작품은 실을 모두 풀어 작품 제작 이전의 상태로 돌려놓는다. 영상매체는 원본 파일을 휴지통으로 끌어넣은 뒤 완전히 삭제하는 과정이 ‘파기’의 형식이 되는 셈이다.



큐레이터 Said, “자극적인 전시? 작가들의 절규에 귀 기울여 달라”


극단적인 선택은 절박함의 방증이다. 독립 큐레이터 김아미 씨는 “작가들이 열심히 제작한 작품을 스스로 파기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활을 걸었다는 의미”라며 “키워드가 자극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왜 작가들이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품 파기라는 퍼포먼스가 개입된 이번 전시는 일부 콜렉터와 비평가들에 의해 미술품의 가치가 매겨지는 상황에 대한 불만도 깃들어 있다. 김아미 큐레이터는 “시장 구조 속에서 자신만의 시각언어를 이야기하는 작가들은 절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놓여있다. 이번 전시는 미술시장에서 상대적 약자인 작가들이 역공을 한다는 의미도 담겨있다”며 “관객모독이라고 느껴질 수 있는 공격적인 퍼포먼스를 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관람자가 작품 구입을 원할 경우 그 자리에서 즉시 가져갈 수 있도록 룰을 정했다. 전시 마지막 날까지 모든 작품이 팔리고 미술관의 흰 벽만 남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이가은 큐레이터는 “모두 팔리는 것을 목표로 한 만큼 적정한 가격 책정이 가장 중요했다. 대부분 작가들이 상당히 낮은 가격으로 출품했다”고 말했다.


관람객들이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가격 정보가 담긴 자료를 현장에서 제공하고 있다. 작품 가격은 수천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다양했으나 대부분의 작품들이 수십만 원 선으로 미술 애호가라면 한 번쯤 구입을 고려해볼 만한 가격대였다. 기획자들은 현재 미술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보다 50% 이상 저렴하게 책정했다고 말했다.


작품을 팔아서 생기는 수익금은 전액 기부된다. 도종준 큐레이터는 “작가들이 힘든 환경에서 작업하지만 우리도 사회의 일원인 만큼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기부를 결정하게 됐다”며 “꿈나무 공부방, 청소년 상담센터, 탈북 청소년 센터 등 네 곳의 복지기관에 수익금을 기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진 작가들 Said, “한 달에 60만원만 있어도…미술계 부익부 빈익빈 심각”


이날 작가들의 입을 통해 들은 예술가들의 삶은 매우 척박했다. 뜨개질 설치 작업을 전시한 보라리(본명 이보라) 작가는 “미술학원 강의, 뜨개질 강의, 며칠을 꼬박 작업하는 벽화 그리기 등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품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신진작가들은 전업 예술가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작가는 “우리는 일반 직장인들처럼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정규직을 가질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정해진 쉬는 시간도 없이 시간을 쪼개 작품을 만들고 일도 한다”며 “한 달에 60~80만원만 있어도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시 대관료, 작품 재료비는 물론이고 작업실을 구하는 일 또한 만만치 않다. 이 작가는 최근 어렵게 마련한 마포구청 자동차 공장지대 옥상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춥지 않느냐는 물음에 “당연히 춥죠. 뜨거운 물을 떠다 놓고 추우면 손을 담그고 괜찮으면 다시 작업하기를 반복하고 있어요”라며 멋쩍게 웃는다.


이자영 작가는 “작품을 파기하는 것은 작가들에게 자살행위와 같다”며 전시에 임하는 진지한 고민을 털어놨다. 이자영 작가는 “전시 기획의도가 작품 판매와 파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많이 고민이 됐다”며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지만 내가 참여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상황에 대해) 아무런 목소리도 낼 수 없기 때문에 작게나마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미술세계의 부익부 빈익빈은 연예계만큼이나 심하다. 유명 작가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신진 작가들이 대다수”라며 “한 시리즈의 작품으로 유명 작가가 됐다고 해서 탄탄대로인 것도 아니다. 한 가지 작업으로 5년 정도 인기를 끌었다면 다음 5년은 또 다른 주제를 가져와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작가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이 세계에서 오래 버틸 수 있겠지만 대다수 작가들은 작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며 “그렇다고 작가들이 ‘팔기 위해’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 작품을 하기 위해 팔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에서 작품이 팔리지 않으면 한국에서 절필하겠다는 작가도 있었다. 오는 25일(토)까지 인사미술공간에서.



문화예술 전문매체 유니온프레스에 2012년 2월 11일자로 보도된 기사입니다.



결국 작품을 팔지 못한 몇몇 작가들은 갤러리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불태웠다. 이 취재를 한지도 3년이 넘었다. 신진작가들의 작업 환경은 이때보다 얼만큼 나아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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