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내 선생님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돼야겠다

by 일곱시의 베이글

근 몇 달간 글 쓰는 일을 계속해야 할지를 고민 중이다.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것을 꼭 업으로 삼을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다.


대학교 4학년 때 인턴기자로 언론사에 들어갔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됐던 터라 당시 나는 미술에 흠뻑 빠져있었다. 미술에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 하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일을 시작하게 됐다. 물론 대학교 때도 글은 쓰긴 했다. 3년간 선후배, 동기들과 함께 학교 신문사에서 신문을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의 나는 기자라는 직업에 환상을 갖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읽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의 주인공 뤼크레스 넴로드는 멋진 여기자였다. 예쁜데다 일까지 잘했다. 만화책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품었다. ‘시마과장’이라는 일본 만화에도 예쁘고 멋진 여기자가 등장했다. 투피스를 입고 취재수첩을 들고 다니는 그 여자가 멋져 보였다. 나도 그런 여성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잊고 살다 내가 그런 꿈을 품었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얼떨결에 이 직업을 갖게 됐다고 생각했지만, 간절히 염원하는 잠재의식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종종 생각한다. 내가 기자가 된 게 내 의지에 의한 것이었는지, 적절한 상황에 따른 것이었는지에 대해서.


기자라는 구체적인 꿈을 품었던 건 아니다. 고등학교 때는 막연히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처음 품은 건 고등학교 2학년 ‘독서’ 수업이었다. 우리는 매주 토요일마다 독서일기를 써냈다. 독서 선생님은 늘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선생님이 어떤 코멘트를 달아줄지 궁금해하며 일기를 썼다. 나는 그 선생님이 정말 좋았다. 나는 선생님께 이런 말을 적었다.


“글 쓰는 일이 재미있고 좋아요. 관련된 직업을 갖고 싶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는지 몰라서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용기를 주세요.”


아래는 당시에 쓴 독서일기 중 한 편이다.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박노자 작가가 쓴 ‘당신들의 대한민국’에 대한 소감이다.




20151221_025316349_iOS.jpg 독서 일기장.




당신들의 대한민국 / 박노자


드디어 당신들의 대한민국과의 질긴 인연도 끝이 났다.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처음 접해보는 어려운 책과 두 달가량을 싸우느라 고생이 많았기에 시원한 마음이 앞선다.


이 책을 무엇이라 평가해야 할까. 읽는 내내 받았던 난해함이 나를 괴롭혔지만 그만큼 한 부분도 놓칠 구석이 없었다. 감탄을 마지못했던 뛰어난 어휘력과 문장력. 한국인인 나보다 수십 배는 잘하는 것 같다. 언어 습득에는 일정한 시기가 있다. 그 시기가 지난 후 한국어를 배워 그 정도 한다는 것은 피나는 노력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홍세화 씨의 평가대로 “그를 갖게 된 것은 우리에게 크나큰 복”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이방인이기에 우리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평가할 수 있는 동시에, 이방인이기에 아무리 한국에 애정을 가져도 결국은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한 사람과 같은 입장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대해 잘 아는 한국인이 우리를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외부의 사람이 그러는 경우 반발심이 들 수 있다.


박노자 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국인들이 ‘싫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 한국인이 지금에 이른 것은 듣고, 보고, 배우고, 말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부당한 상황에서 싫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을 개인의 양심에만 호소해서는 안 된다. 물론 우리도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수직적인 인간관계, 기득권층의 정권유지를 위한 몸부림, 물질만능주의 만연 등은 사회 구조가 뿌리부터 바뀌어야 하는 문제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당장 굶어 죽게 생겼는데 무슨 자유를 외치겠느냐던 독재 시절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완전히 안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이제 경제발전보다는 정직하고 깨끗한 사회 구성, 부의 재분배가 필요한 때이다. 우리나라에도 아직 배고픔에 시달리는 극빈층이 존재한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에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들에게 우리의 먹을 것을 나눠줘야 한다. 그들에겐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얼마이고, GDP가 세계 몇 위인지는 관심거리가 아니다. 단지 자신에게 처한 가난이 저주스럽고 슬플 뿐이다. 요즘 따라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의 소식이 많이 들린다. 참으로 안타깝다. 자살은 극한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인간 최악의 - 본인들에게는 ‘최선’이었을 - 선택이다. 내 일이 아니다 생각 말고 그들이 대체 왜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됐는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또 살아갈 이 곳이 좋다. 그러기에 대한민국이 아름다워지기를 바란다. 서로를 사랑하고 행복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하고 정직한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 충고해주신 대로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보았습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비판적으로 글을 읽을 수 있는 힘을 길러야겠죠. 글 쓰는 일이 재미있고 좋아요. 그래서 관련 직업을 갖고 싶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는지 몰라서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용기를 주세요.

/ 2004년 5월 1일


(선생님이 나에게)

‘문학’을 하겠다는 사람은 처음부터 그것을 위해 그 길을 가게 되는 경향이 많아. ‘글’은 문학의 범주보다 훨씬 넓어.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해 사유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도 좋아할 때 좋은 글을 쓸 수 있거든.(너의 경우지) 혜원아, 우선 네 소중한 그 생각을 키워나가고 뭔가 글만 아닌 일을 하는 직업을 찾아봐. 그 일을 하면서 더욱 쓸 거리와 쓸 일이 많이 생길 거야. 그것이 참 글이 되니까. 네가 읽은 많은 책들의 저자가 하는 일이 다양하잖니. 넌 할 수 있어.

/ 2004년 5월 21일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독서 선생님은 암 진단을 받고 휴직에 들어가셨다. 친구들 몇 명과 함께 선생님 집을 찾았다. 항암치료 때문에 털모자를 쓰고 계시긴 했지만 이제 괜찮다 하셨다. 우리는 그리 무겁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피자를 먹었다. 선생님과 헤어지고 난 뒤엔 노래방에도 갔다.


그렇게 선생님을 잊고 살던 중 부고가 들려왔다. 대학교 1학년 겨울이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첫째 날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장례식장에 갔다. 아직 어린 선생님의 아이들이 보였다. 눈물이 났다. 둘째 날엔 혼자서 장례식장에 갔다. 내게 용기를 주셔서 고맙다고, 앞으로 꼭 멋진 어른이 되겠다고 약속하고 돌아왔다.


지금 하늘에서 선생님이 나를 보신다면 흐뭇해하실까? 잘 모르겠다. 부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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