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원 Feb 11. 2016

기자의 무게, 기자의 보람

한의원에서 코디네이터 일을 한 적이 있다. 반년은 풀타임 상담실장으로, 반년은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다. 즐거운 경험이었다. 고객 응대는 감정노동이라지만 사실 난 그리 힘들지 않았다. 물론 진상 고객도 있었지만 크게 신경을 안 썼다. 천성에 맞는 듯 했다.     


그러나 종종 회의감이 몰려오는 순간이 있었다. 한주를 마무리하는 토요일 오후 4시, 혹은  한 달을 마무리하는 월말 마감 시즌이다. 물품 입출고내역과 매출 내역을 정리해야 하는데 이따금씩 계산이 맞지 않았다. 그럴 때면 일주일치, 길게는 한 달치 영수증을 일일이 확인하며 장부와 실제매출을 맞춰야했다. 30분이 걸릴 때도, 몇 시간이 걸릴 때도 있었다. 오랜 시간의  작업 끝에 계산이 딱 맞으면 기분이 무지 좋다. 그런 동시에 약간의 허무함이 몰려온다. 내가 이걸 이렇게 열심히 해서 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될까?     


결국은 내가 해야 할 일일뿐이다. 계산을 맞추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제대로 못하면 큰일 나는 일이다. 하지만 똑떨어지게 맞췄다고 누군가 칭찬을 해주거나 내 커리어가 쌓이는 일은 아니다. 어쩌면 당연할지 모르는 이 사실이 나를 갸우뚱하게 했다. 열심히 추가근무를 해도 큰 보람이 없다는 것에 대하여.     


그래서 내가 기자라는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자생활을 하며 수많은 야근을 했지만 내 기분은 그때와 달랐다. 열 번의 야근 중 열 번 모두 집에 오는 길엔 뿌듯했다. 열 번의 야근 중 아홉 번은 자발적이었다. 데스크에서 일을 많이 줘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아니라 내 기사를 더 잘 쓰고 싶어서 한 일이었다. 결과물이야 어찌됐든 마감을 털고 집에 오는 길은 개운하다. 내 이름이 적힌 기사가 조금이라도 더 낫게 하고자 한 일이었기에.     


보람이 무거운 책임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어떤 때는 그냥 조용히 그림자처럼 지내고 싶어도, 어찌됐든 내 이름을 건 기사가 매일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름 석자 걸고 대충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곧장 내 커리어로 연결되는 일이고, 기록에 남는다. 이미 출고된 기사는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물릴 수도 없다.      


일을 그만두고 싶은 때도 있었다. 내 이름 세글자가 도드라지지 않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다른 일을 하며 만족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해보지 않고선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오늘처럼 기사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는 날엔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하루 종일 꼼짝 않고 앉아 남의 글을 읽고, 모르는 사람에게 연달아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묻는다. 무례하다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늘 내가 받은 중압감이 더 나은 결과물로 보답하기를 바랄뿐.

매거진의 이전글 5시 퇴근법 시행, 생각보다 간단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