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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Jun 27. 2016

‘K문학’ 띄워주기에 대한 어느 번역가의 일침


“어떤 출판사도 원작이 한국이라는 이유만으로 관심을 보이지는 않을 겁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해 맨부커상을 공동수상한 영국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속 시원한 이야길 했다. 지난 19일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주제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의 포럼자리에서다. 스미스는 “국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정부 주도의 시도나, 세계 주요작품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는 맹목적인 주문은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옳은 얘기다.


일부 언론과 문학계는 한강의 수상이 한국문학의 쾌거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틀린 얘기다. 한국문학이 잘해서가 아니라 한강이 잘 써서 받은 상이다. 그들은 한강의 공(功)을 한국문학의 공으로 돌렸다. 아니, 가로챘다. 작가의 소설쓰기에 도움을 준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이런 일은 한국에서 자주 벌어진다. 개인의 공을 국가의 것으로 끌어당기는 일이다. 김연아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면 한국 피겨스케이팅이 세계에 우뚝 섰다고 표현하고, 싸이가 잘 나가면 K팝 열풍이라고 한다.


K(Korea)로 시작하는 이름붙이기는 정부에서 특히 즐겨하는 일이다. 우리말로 풀자면 ‘한국형’ 정도가 되겠다. 이제는 고유명사가 된 K팝부터 시작해 K푸드, K문학, K뷰티, K브랜드, K컬처까지 장르를 망라한다.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국이 신드롬을 일으키자 미래창조과학부에서는 한국형 인공지능을 만들겠다며 대책을 내놓아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선진국에서 하니 우리도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조급증이 너무나 잘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의 평가를 신뢰하지 못 한다. 나라밖에서 인정받아야 비로소 인정해 준다. 외국인이 우리 것을 좋아해주는데 열광한다. 할리우드 스타가 “김치 맛있어요” 하면 기사 제목이 된다. 강남스타일이 세계에서 인기를 끄니 말 춤 동작을 형상화한 초대형 조형물이 코엑스 앞에 세워진다. 국내에서 아무리 호평 받는 예술가라도 큰 관심이 없다가 해외 저명인사가 훌륭하다고 하면 그때부터 대단한 예술가 대접이다. 그만큼 우리 내부의 평가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씁쓸한 일이다.



중기이코노미에 2015년 6월 26일자로 보도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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