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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dgemaker Aug 21. 2020

혼자 사는 남자의 부동산 이야기

나의 집(터) 이야기

투자를 위해 부동산에 집을 내놨다.


부동산 가격이 쉴 새 없이 오르면서 살고 있던 집을 팔고 다른 부동산 투자처를 새로 찾아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부동산에 집을 내놨다. 내놓으면서도 아쉬워 집의 내력과 장점에 대해서 부동산에 장황하게 설명하고 잡지사에서 인터뷰할 때 찍어줬던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호가도 은근히 더 높게 불렀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빨리 부동산을 갈아타야 한다는 마음으로 집 주변 부동산들을 돌아보고 집으로 오면서도 설마 이 가격에 이 집을 사겠어하는 안도감 같은 복잡 미묘한 심정을 가슴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대하지 않았던 부동산에서 연락이 오다.


퇴근길 갑자기 울리는 휴대폰 너머로 부동산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산다는 사람이 여러 명 있다며 집을 보고 싶다고 한다. 설마 누가 이 가격에 집을 사겠어하는 마음이었는데 막상 연락이 오니 가슴이 이상하다. 이감 정은 도대체 뭘까? 한참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었는데 퇴근하는 길 왠지 모를 이유로 가슴이 뭉클해졌다.

오래 사귄 연인에게 이별 선고라도 한 거 같은, 도대체 이 뭉클함은 뭘까?


마치, 오래된 연인에게 이별 고백이라도 한 것처럼 한 번도 헤어짐을 생각해본 적 없는 존재가 내 인생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해서 하루 종일 기분이 우울했다.


나에게 이 집은 뭐였을까?

왜 이렇게 미안한 감정이 들까?




나에게 집이란


고등학교를 기숙학교로 진학하면서 본가에서 나와 지금의 집에 와서 살기까지 13년을 방랑하며 살았다.

그동안 이사만 12번 했고 별의별 곳에 살면서 고생도 정말 많이 했다.

아마 사람이 살 수 있는 모든 구조의 장소에서 기거해본 것 같다.(고시원/반지하/상갓집/불법개조 원룸/오피스텔/아파트/상가주택/다가구주택)

20년 된 월 20만 원짜리 어두운 고시원 방에서, 빛 한 줌 안 들어오는 반지하방에서, 하루 종일 노랫소리가 들려오던 노래방이 있던 건물 원룸에서.. 서울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20대의 나는 끈질기게 버텼다.


그렇게 서울 어딘가를 전전하며 살아갈수록 터에 대한 갈망은 커졌고, 그사이에 딸린 식구가 늘었다.(첫째 고양이 삐약이)식구가 생기면서 더 이상 집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25년 된 집을 구매하다.


30년 전에 멈춰있는 듯한 인테리어

2014년 나는 대기업에 입사하자마자 내가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돈을 끌어모아 25년 된 낡은 집을 구매했다.  난생처음으로 내 공간이 생기고 터를 잡고 살기 위한 장소가 생긴다는 감정은 정말 감격스러웠다.


어린 나이에 집을 구매하려는 사회 초년생을 바라보는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상한 물건을 소개해주거나,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제시하거나, 빈틈이 보이거나 무지해 보인다 싶으면 정보를 알려주기보다 그걸 이용해서 호구 잡으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호구 잡히지 않기 위해서 더 악착같이 알아보고 주체적인 판단하기 위해 공부했고 가능하면 모든 걸 스스로 처리했다. 심지어 풍수지리까지 찾아보고 공인중개사 시험까지 쳐보려고 했다. 누가 보면 작은집 하나 사는데 뭘 그리 오버하냐고 하겠지만 난생처음으로 가장 큰 소비를 하는 사회초년생에게 이건 인생을 건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발품 팔아 돌아다니던 중 마침 내가 구매할 수 있는 매물이 하나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집주인의 관리 없이 지체장애인 아저씨와 노모가 기거하고 있던 집이었다.



사랑하는 나의 동네, 나의 집


집을 구매하고 나서 6개월 동안은 자금사정 때문에 다시 고시원에서 살았다. 얼마 후 이사 갈 세입자 돈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도 있지만 인테리어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돈을 아낄 필요가 있었다.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을지로 회사 근처에 가장 싼 고시원을 찾다 보니 70년대에 지어진 건물에 창문 하나 있는 0.5평짜리 고시원에 기거하게 되었다.

 

그동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벽지로 둘러싸인 공간, 지금은 열악하지만 곧 이사 갈 날을 꿈꾸며 내 집에 대한 꿈을 키워나갔다.  

낡은 고시원은 여름에는 복도에 있는 한대의 에어컨을 14개의 방이 공유해야 했다. 더위를 못 이긴 일용직 근로자들이 벌거벗은 채로 문 열고 자고 있었고 저녁에 들어간 공용 주방에는 불을 키면 바퀴벌레들이 숨기 바빴다.


사람이 바퀴벌레 같아진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악했지만
1년 후 생길 내 집에 대한 꿈으로 하루하루 버텼다.


셀프 인테리어를 시작하다.


입주일이 다가오면서 돈을 아껴보려고 셀프 인테리어를 하기로 했다. 당시에는 셀프 인테리어 붐이 일어나기 전이라 스스로 알아보고 시작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나를 위한 공감을 만든다는 기쁨으로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내 하루 라이프사이클을 분석해보고 내가 하루 중 어떤 시간에 집에 머무르는지, 내가 좋아하는 색은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조도는 무엇인지, 내 키에 맞는 동선과 탁자 높이는 무엇인지 까지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해나가면서 나에게 최적화된 공간을 계획했다.



페인트 장인 아저씨와 도와주러 광주에서 올라온 동생
인테리어 할 때 도움을 주신 분들

돈이 없으니 몸으로, 애교로 집의 모든 것을 철거하고 다시 고치고 그렇게 2주간의 개고생 끝에 25년 된 오래된 아파트는 타일 하나부터 조 명 하나까지 나를 원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중간에 작업자가 도망간다거나 공사가 잘못되었다거나 하는 일들이 있었지만 끝나니까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마 내 수명중 일주일을 갈아 넣었던 것 같다.)





집에서의 추억들


그렇게 완성된 내 집은 내 20대 후반의 슬픔과 기쁨 외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했다.

사람은 떠나도 터는 남는다.  시끌벅적하게 놀다 떠나버린 친구들 뒤로 남겨진 위로 움처럼

집을 비울 때면 하루 종일 나를 기다렸을 나의 집 그리고 우리 고양이들.


집 앞 탄천의 겨울 -  눈이 오면 탄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다.

아직은 집을 팔 준비가 되지 않았다. 돈은 좋지만 나의 추억과 애정의 공간이 자본주의 논리로 평가되어버린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이다.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는 곳 사랑하는 나의 집 우리 동네

집에서 만드는 요리시간은 항상 즐겁고, 기르는 식물들은 봄이 되면 파릇하다.


내가 사는 지역은 앞으로는 뒤로는 탄천이 흐르고 옆으로는 불곡산이 있다. 오래전에 이곳에 금광이 있어서 마을명이 유례 되었다고 한다. 사계절에 따라 아름다운 사랑하는 우리 동네 앞으로도 잘살자..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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