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법의 역사 그리고 SNS 재판소의 탄생
디지털 교도소 : 살인, 성범죄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 대한 신상을 공개한다는 명분의 불법 개인정보 유포 사이트로 운영자가 범죄자라고 생각하면 신상을 불법적으로 유출한다.
얼마 전 디지털 교도소 1기 운영진이 경찰에 붙잡혔다. 디지털 교도소는 범죄자의 신상을 일반인이 만든 사이트에 올려 공개시키는 사이트인데 이와 같이 국가의 법 시스템과 별개로 여론에 의지하여 심판을 받으려는 현상이 몇 년 전부터 관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몇 년 전부터 내가 유심히 보고 있는 메가 트렌드중 하나인데 오늘은 근현대사를 지나오며 법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시작으로 SNS 재판소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참고 : "혐의 인정, 안 억울하다"… 디지털 교도소 1기 운영자 '구속'
근현대사를 지나오며 우리나라의 법은 많은 고난을 겪어왔다. 법은 공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규범 또는 관습을 말하지만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법은 공동의 가치라는 탈을 쓰고 권력자들을 비호해 왔다.(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와 트라시 마쿠스의 논쟁에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
"적어도 법률을 제정하는 데 있어 각 정권은 자기 이익을 목적으로 합니다. 일단 법 제정을 마친 다음에는 이 법을 정의로운 것인 듯 공표하고서는 위반하는 자들을 정당하지 못한 일을 한 자들로 취급하고 처벌하는 것이죠. 정의는 참으로 순진하고 올바른 신민들을 조종해서 강한 자들에게 편익이 되는 것을 행하게 할 뿐이에요. 그들은 강자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할 뿐, 결코 자신들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하는 게 현실이란 말입니다."
- 플라톤의 국가 1권 중 트라시마코스의 주장-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경국대전을 시작으로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난 주체적인 법전을 만들었고, 조선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홍범 14조를 반포하여 재판소 구성법을 통해 오늘과 같은 재판소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후 일제 강점기와 군사정권을 지나오며 법은 권력자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었고 법의 공정성에 큰 위협을 받게 된다. 우리가 법을 공정하다고 느끼지 못하게 된 이유는 이러한 역사에 기인할지 모른다.
참고 : 근대 사법제도와 일제강점기 형사 재판
참고 : 강자의 이익이 정의인가?
참고 : 우리나라 법의 역사
SNS 재판소 : 기존 법체계를 통하지 않고 SNS와 같은 인터넷 여론을 통해 사건을 판결하는 여론 재판소
군사정권이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사회의 권력은 총의 힘에서 돈의 힘으로 이동했고 법은 여전히 권력자의 편이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처럼 법은 여전히 "문민"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법이 국민들에게 멀어지는 사이 주먹과 여론재판이 국민들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범죄와의 전쟁으로 대표되는 주먹의 시대를 지나 SNS를 통한 여론재판으로 사회의 정의를 판단하기 시작한 것이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법으로 처리하기보다 인터넷에 올리고 사람들이 자신에게 동조해 주기를 바란다. 여론이 형성되면 법 처리도 빨라지고, 법적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자신의 의견을 동조해 주는 사람이 많을수록 자신이 윤리적으로 더 정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법적 심판과 상관없이 여론전으로 사건의 경과가 바뀐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대기업과 개인의 싸움과 같이 법적으론 문제가 없었을지라도 여론의 심리적 판결은 불매운동을 통해 법적으로는 내릴 수 없는 처벌까지 내리기도 했다.
1인 미디어의 발전도 이러한 현상에 영향을 미쳤다. 아프리카 TV와 유튜브를 통한 1인 미디어가 발전됨에 따라 검증되지 않은 인물들이 유명해지면서 이들의 도덕적이지 못했던 과거의 언행과 사건들이 주목받게 되었다. 보통 이런 사건들은 법적 문제보다는 도덕적 문제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법원이 아닌 SNS 재판소로 가지고 나오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연예인들은 소속사를 통해서 공인으로서의 적어도 최소한의 책임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일반인들의 경우 특별한 이슈로 순식간에 유명해지는 일이 많기 때문에 공인으로서 도덕적 관념이 충분히 성숙될 기회를 갖지 못한다. 반면에 1인 미디어는 SNS 재판소의 판결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SNS 재판소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들은 채널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이슈나 사회적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사건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공론화시키기 때문에 SNS 재판소의 파급력을 확장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 따라 SNS 재판소가 탄생했다. 내가 SNS 재판소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러한 현상이 단순히 생겼다가 사라질 유행이 아닐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급격한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정보 전파속도가 빨라지고 개인의 영향력이 높아짐에 따라 기존과는 비교할 수 없는 파급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기존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으로 개인에게는 법적 옳고 그름보다 나의 가치관에 기반한 도덕적 옳음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앞으로는 기존 법체계가 해결해주지 못했던 사건들을 SNS 재판소를 통한 여론재판에 의지하는 사례가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편에서는 이렇게 탄생한 SNS 재판소의 새로운 특징과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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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다 주먹? 요즘은 법보다 SNS (1),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법의 역사 그리고 SNS 재판소의 탄생
법보다 주먹? 요즘은 법보다 SNS (2), SNS 재판소의 새로운 특징과 위험성
법보다 주먹? 요즘은 법보다 SNS (3), 공평하고 공정한 가치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