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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진 WonjeanLee Sep 11. 2016

'굿와이프'로 본 경력단절여성

"벽에 똥칠을 해서라도 버텨라" vs "천작(天爵)을 찾아라"

다 보지는 못했다.

미드와의 연관성 파악도 못했다. 

그러나 분명 나에게는 파워풀했다.

전도연이 분한 '굿와이프' 얘기다.

  

굿와이프는 경력단절여성 김혜경을 내세운다.  

그는 고시를 합격한 특이한 경우다. 전문직이다. 원래 똑똑했다. 

그러나 이러저런 이유로 그 일을 포기하고 엄마로서 부인으로서 살다가

남편의 배신과 함께 가정을 떠안으며 단절됐던 직업세계에 발을 디딘다.  


#1.  돌봄노동자로 산 15년 경력, 빛을 발하다.


그녀의 엄마로서의 경험, 한 가정의 돌봄노동자로서 산 경력은 

재벌의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대생 등

피해자의 입장에 서 본 사람 

공감을 원하는 피고인들에게 호소력 있는 이력이 된다. 

그게 내키지는 않지만 무슨 일이든 해내야 하고 증명해야 하는 그녀로서는

그 선택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제가 설득해볼게요"

늘 재판에 관건이 되는 증언을 위한 증인 설득은 김변 몫이다.

해오던 게 그 일이니 잘 해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경력단절 여성은 2013년 상반기 기준 195만 5000명. 

20세에서 54세 사이의 기혼 여성 중 

결혼, 임신, 출산, 육아, 자녀교육 등의 이유로 

직장이나 일을 그만두고 취업하고 있지 않은 여성이다.

20~54세의 기혼여성 971만 명 중 

취업하지 않은 여성은 406만 명이며 

비취업 여성 중 경력단절 여성은 48.1%를 차지한다. 

일하지 않는 기혼 여성 2명 중 1명은 가정일 때문에 그만뒀다는 거다.

이들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은 

김변처럼 직장에서 부딪혀봐야 안다. 


전도연은 늘 예의 그 피곤하고 수수하고, 힘빠진 형태로

그래서 늘 회사 동료들에게 "피곤해 보여요"란 말을 들을 법한 얼굴로

할 말을 다한다. 

그야말로 '입이 트이는' 화법을 구사한다. 

속이 뻥 뚫린다. 사이다.


#2. "when they go low, we go high"


여자로서 회사생활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남성들이 여성의 외모를 함부로 얘기할 때 느끼는 부아.

"미모의 여00 만나서 영광입니다. 요즘 00 업계가 미모를 기준으로 뽑나 보죠?"

라는 말을 칭찬으로 알라는 식으로 할 때 

"그 말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판단하고 지적할 지력을 기준으로 뽑죠."

라고 받아치고픈 심리.

그만큼이나 듣기 싫은 말이 

"피곤해보여요(나 너 걱정하는 거 맞아. 그런데 너 그 얼굴과 그 체력으로 일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니?)다. 내 생산성 걱정을 왜 당신이 하지?

내가 집에서 애들보랴, 일하랴 힘든 건 당신이 도와준 건 아닌데.


김혜경은 보통 무례한 남성들에게 당하고 부글거리지 않는다. 

뒤에 가서 후회하지도 않는다.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무시로 일관한다. 

근데 매번 당하는 건 아니다.


"법정에서 봬요."

사실상 꺼지라는 말. 

"진실은 하나예요. 그 진실은 제가 정하고요."


가끔 그녀는 눈빛으로 말한다. 

너 나 가만히 놔둬. 함부로 평가하지 마. 

그러면서도 

그녀는 

"when they go low, we go high"한다. 

품격을 잃지 않는다.


그게 그녀를 배우고 싶게 만든다. 



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6072410117295506



#3. 집은 딱 좋을 정도로 지저분깨끗


이상하다. 김변 정도 바쁘면 집에 도와주시는 분이 분명히 있다. 

물론 친할머니가 자주 등장하시긴 한다. 그래도

전도연은 대체로 혼자서 한다. 

그래서 못 할 때가 많다. 

밤을 새기도 하지만 당당하다. 애들은 컸고 엄마를 이해하는 나이다. 

가정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게 김변에게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녀는 그녀의 일터이자 삶터로 집을 그 정도로만 잘 유지하고 있다. 

'살림'을 잘한다는 기준이 뭘까.

구성원들이 잘 살고 있으면 되는 거다.

굳이 살리지 않아도 이미 스스로 살고 있기 때문.

애들이 좀 큰 게 살짝 부럽다고나 할까. 



#4. 경력단절=인작, 나를 찾는 제2의 인생=천작


회사를 그만둘 때

"벽에 똥칠을 해서라도 버텨라"고

조언해주신 여자 선배들이 많다. 


문고리를 붙잡고 버텨야 한다. 

버티는 게 이기는 거다. 

그 의미를 모르는 거 아니다. 

유리천장을 뚫은 많은 여성들은 그렇게 했다.

솔직히 그 길을 못 가본 게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봐야 하는 게 

맹자가 말한 '천작(天爵)'과 '인작(人爵)'의 구분이다. 

맹자 고자상 16장에 보면


"孟子曰(맹자왈) 有天爵者(유천작자)하며 有人爵者(유인작자)하니

맹자 왈, 천작이라는 것이 있으며 인작이라는 것이 있다. 


古之人修其天爵(고지인수기천작)하니 而人爵從之(이인작종지)러니라 

옛 사람이 그 천작을 닦으니 인작이 그에 따랐다. 


修其天爵(수기천작)은 以爲吾分之所當然者耳(이위오분지소당연자이)요 人爵從之(인작종지)는 蓋不待求之而自至也(개부대구지이자지야)이라 

그 천작을 닦음은 써 내 분수의 당연한 바를 할 뿐인 것이요, 인작이 따르는 것은 대개 기다려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르는 것이다. 


今之人修其天爵(금지인수기천작)하야 以要人爵(이요인작)하고 旣得人爵而棄其天爵(기득인작이기기천작)하나니 則惑之甚者也(즉혹지심자야)이라 終亦必亡而已矣(종역필망이이의)니라 

지금 사람들은 그 천작을 닦아서 써 인작을 요구하고, 이미 인작을 얻으면 그 천작을 버리니 곧 미혹함이 심한 것이라. 마침내 또한 반드시 잃고 말 따름이다. "



내게 주어진 인작은 

'경력단절여성'이다. 

사회가 붙여준 꼬리표다. 

외부적 기준이다. 

한국사회에서 '적(籍)'이 없다는 말은

시민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수모를 겪어야 하는 것도 알고 있다. 

하다못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입소시키기 위해 

아이가 셋임에도 불구하고

우선순위 맞벌이임을 증명하기 위해 온갖 고단한 일을 해야 할 때다.


물론 적이 없지 않다. 

부지런히 이러저런 일을 하고 있고, 소위 프리랜서다. 

그러나 친구들을 만나는 어느 순간

명함 없이 내가 어떻게 살고 있음을 장황하게 설명해야 할 때, 

"나 이런 데서 일하며 이 일이 현대사회에 이런 의미가 있어. 

그리고 궁금할까봐 그러는데 얼마 정도 벌고 있어."할 때

나를 증명하고 싶어 안달이 난 내가 싫어질 때가 있다. 

가끔 친구가

"백수가 무슨 돈을 내" 할 때는

받아먹어 좋아라 하면서도 한 대 때려주고 싶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알고 있고

내가 가고 싶은 길(천작)을 알 것 같다는 내 마음을.

그건 어느 한 회사에 고정된 타이틀이 아니고 브랜드가 아니다. 

누군가를 위한 supporting function이 아니라, 

나 자신이고 싶다. 

나의 천작을 찾아가는 과정에 누구보다 열심히 투자하고 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즐겁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COO가 한 인터뷰에서 그녀의 후배 어록을 전하며 

"커리어는 사다리가 아니라 정글짐"이란 얘기를 했다. 

아이들과 미국에서 보낸 1년 동안, 정글짐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놀이터의 상징물이었다는 게 생각났다. 

몽키바를 하며 매달리는 가하면, 쭉 내려온다. 

아이들은 퍼즐처럼 내려왔다 올라왔다를 반복했다. 

거기서 아이들은 서로 부딪히고, 또 새로운 공간을 마련한다. 

정글짐과 사다리의 차이는 정글짐엔 단절이 없다는 거다. 


다시 말하자.

경력단절은 없다. 

굿와이프(good wife)와 

굿어토니(good attorney)와

굿마더(good mother)

또는

굿이원진(GOOD WONJEANLEE)이

계속 있었고 또 영원히 있을 뿐이다.


195만 5000명. 

그들은 통계로 잡히는 경력단절여성이 아니다.

국가 차원에서 5조 원의 GDP 손해를 끼치는 여성이 아니다.

그들은

'사람잡는 정체성' 속에서 

'사람잡는 인작' 속에서

끊임없이 나의 천작을 찾으며 몸부림치는 

숭고한 사람이다. 

그래서 '終亦必亡而已矣(종역필망이이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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