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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악치료사 이원지 Mar 09. 2023

음악, 난민, 음악치료. 우린 충분히.

음악으로 난민을 치료하고, 난민으로 나를 치료하는. 우린 즐거운 중.


"음악치료". 현재 내 삶과 뇌에서 가장 커다란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앞으로도일 그 단어.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음악치료학과 3학기를 거치며 (지금은 4학기 종강을 맞아 기쁜 중.) 졸업을 패스하기 위한 논문과정에 충실하고자 실험연구를 기획하였고, 어찌저찌하여 내 20대 청춘을 몸 담았던 난민지원단체에서 사랑하는 그네들과 음악치료의 명목으로 다시한번 만난.

 

 

 하여 매주 목요일, 명목상 논문활동을 위한 음악치료이기에 약간의 긴장과 나름의 부담이 있는것은 사실이나, 학교에서 대여한 악기를 한아름 싸안고 가산으로 향하는 그날 오전 부릉길은 꽤 설렘스럽다.

 현재 6회차까지 마쳤고, 내가 기획한 활동은 12회차까지. 딱 절반을 달려온 셈이다. 그 과정과 찰나들에서 나는 무엇을 느껴가고 얻어가고 있는지. 동시에 음악치료 대상자인 그들은 또 어떤지. 이제 중반이니 객관, 주관을 믹스한 중간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극히 딱딱하고 문서문서한 글을 써야하는 부담백배 논문이 아닌, 이 공간이기에 나의 그것대로 말랑하게, 때로는 가벼이 옮겨본다. 이렇게라도 생각을 어딘가 지면에 부어놓지 않으면, 대대소소한 이벤트들이 증발되기 때문.




아직도 그렇다.

목요일 열한시,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와 문 안으로 들어오는 어둔 표정들.

몇 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목요일 열한시, 문이 열린 후 첫 만남 순간은 약간의 어색함과 낯섦이 맴돈다.

그들 뿐 아니라 나도 여전히 쉽지 않은 그 정적을, 애써 치료사로서의 책무감으로 가려버리고

높은 텐션과 가득한 반가움으로 How are you doing?을 외치며 아주 많이 매우 기쁘게 그들을 맞이한다.

 숙소 옆방의 소음, 불면증, 맥도널드 버거 등 이러저러한 보통의 이야기들로 인사를 나누다보면, 시간을 여유로이 사용하여 조금씩 늦는 님들이 등장하고 그렇게 음악치료는 활짝(아직까지는 치료사만.) 시작된다.



난 그게 좋다.

한국이 싫고, 생각이 많아 잠을 자지 못하고, 본국에 남아있는 자녀들이 걱정되고, 일자리가 없고, 돈이 없고, 몸이 아프고. 세상 어둡고 깜깜한 이야기와 분위기 속에 휩싸여있던 중 음악이 시작되고, 그들이 세션에 집중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 이 구간에서 악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재빠르게 손을 움직이고, 흑인 고유의 충만한 feeling으로 기가 막힌 엉덩이춤을 구사하며, 치료사와 눈을 맞추고, 무엇보다 미소를 넘어 까르르 웃음이 터져나오기까지 하는 그 순간.

때로는 경이롭다는 표현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어두움에서 밝은 웃음까지의 그 구간이, 그 시간이 이토록 짧을 수 있구나. 그것이 음악으로 가능하구나. 음악의 힘이란 단어는 진부하고 흔하나, 정말이지 아주 센 힘이 있는 것은 맞는가보다.  

   




처음엔 그랬다.

수없이 어마어마한 막막함들을 어깨 위 몇 겹씩 턱턱 짊어지고 사는 이들에게 일주일에 한번, 한시간 내외의 이 세션이 의미가 있기나 한걸까. 그 어둠을 한 치라도 물러가게 할 수 있을까. 꽤 무거운 무게로 나를 짓누르는 혼란한 생각들에 점점 더 밀려가다, 그래. 생각의 방향을 바꿨다. 


이 시간만큼이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이라도. (잠시 풍월을 읊자면, 세션에서의 충만감을 강조하는 모델이 "음악중심 음악치료"의 한 가지이긴 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즐겨진다. 즐길 수 있어진다. 워낙 땀이 없는 몸뚱이에서 땀이란 이름의 습기가 몽글 차오르는걸 보면. 땀이라는 귀한 습의 열매는 나도 곡의 리듬에, 박에, 악기에, 그들의 목소리에, 노래에, 표정에 나의 온힘을 다해 집중하고 몰입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들도 물론.


 

한 회기마다 Peak experience, 즉, 절정 경험이라고 표현하는 그 순간을 가지려고 애쓰는데(물론 그렇게 해야한다고 배웠다. 배움에 충실한 편.) 그 절정과 몰입의 경험이 세션 안에서 그들에게 의미있게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믿어본다. 아니, 믿는다. 




우리는 분명, 즐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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