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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악치료사 이원지 Mar 09. 2023

내담자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하여.

난민과의 12회기 음악치료를 마친 지금에서야.



12회기를 다 마친 지금.

결론적인 깨달음을 자세히 마주해본다.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던 나의 시선에의 변화, 그것의 시발점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름 신이 내게 주신 gift 여긴, 나만의 고유한 그것은 "긍휼함"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물론 by myself.


그도 그럴 것이, 구부정한 하얀머리의 뒷모습만 보아도, 병상 고통 가득의 이야기만 들어도, 이웃집 순이의 어떠한 힘듦만 접해도, 눈에 물이 고여버리고 마음에 울렁출렁이 가득해지기 때문. 스무살, 사회복지를 선택한것도 유사한 맥락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양한 사회적 약자를 만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싶다는 바람은 나를 존재토록 하는 이유이자, 종교적 책무이기도 했으니,  20대의 이러저러한 시절을 비정부기구에서 그네들을 만나며 지나왔다. 그러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더욱 '잘' 돕기 위한 '전문적'인 '도구'가 나에게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결혼을 했고 임신과 출산을 거치며 7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그 생각의 마무리에 다다르며 음악치료를 선택하게 된 것. '전문적'인 무언가를 가지고 다시 만난 난민분들에게 야심차고 야무지며 성실히 준비한 음악치료 세션들을 진행한 후의 현재, 지금의 나는 과연 어떠한 깨달음 앞에 서있는가.


은근한 마음들.

아이고, 짠해라. 얼마나 힘들까. 이런 삶이라니, 하, 얼마나 얼마나...


그래, 그 마음에의 변화다.

그들은 짠한 존재가 아니었다. 강한 존재였다. 고난과 고통을 통과하는 과정 중에 생겨난 단단한 알맹이(쉽게 깨지지 않는)가 있었다. 편안한 생활에 익숙해져버린 나로선 감히 만들어낼 수 없는 단단함. 그 단단함은 단순하기까지 했다. 물론, 삶의 힘듦을 토로하고 어려워하며 어두우나, 분명 단순한 단단함이 뭉근히 은근히 언저리와 중앙에, 그들의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편안치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하여, 박해의 위협을 당하고 있다고 하여, 도망자 신분이라고 하여, 짠히, 불쌍히, 나보다 더 낮게! 생각할 존재들이 아니었다는 것.

되려 나보다 강하고, 나보다 단단하며, 나보다 단순했다. 더 나아가, 내가 그들로부터 배우는 것들이 분명 존재했다. 그 사실들은 나를 놀라게, 민망하게, 반성하게, 겸손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비로소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긴다”그 문장을 아주 적은 양으로나마 알 것만 같은 무언가가 솟았다. "낮게"가 아니라 "낫게".


예상해 보건대, 음악치료의 길을 걸으며 만나게 될 대상들은 사회적 약자가 많을 것이다. 5학기의 대학원 과정 중, 실습 대상들만 나열해 보아도, 장애아동, 노인, 정신과 환자 등이기에.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의 약함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겠으나, 나는 이번 12회기를 거치며 나름의 확고한 배움을 얻었다. 그들은 나에게 또다른 배움을 가져다줄 알맹이를 품고 있을 것이란 것.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

어찌보면 치료사로서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그 시각의 전환이 일어난 첫 단계.

이번의 12회기는 그것으로 족하다. 그것으로 매우 기꺼웁다.


치료사로서의 권위를 지켜나가되

내담자를 바라보는 편견에서 자유로우며

전문적인 실력과 공감능력으로 함께하는 치료사.


겸손함과 단단함을 배워낸 나의  발자욱을 격려하며, Bon Cour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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