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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악치료사 이원지 Jun 09. 2023

글에 묻혀 사는 날들

_1. 비자발적이고 수동적인 삶도 꽤 괜찮군

'230608.


감사하게도 논문은 잘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써내려가야하는 글들은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는다. 안타까운 것은 기록해야하는 글의 성격이 꽤나 딱딱해야 한다는것. 논문에 계속 매여있다보니 조금 부드러운 글을 쓰려할때도 ~기에, 유의미하여, 확인하였다 등의 단어들이 떠다닌다. 후훗. 재밌어.

 

쨌든, 교수님께 음악치료 사례집에 삽입될 위기청소년 사례에 대한 글쓰기를 제안받았다. 주제는 난민아동과 청소년. 그리하여 또 센터의 동의를 거쳐 며칠간 머릿속으로 내용을 구상하고 이삼일에 걸쳐 글을 써내려갔다. 이 글 또한 몇번의 피드백과 수정을 거치긴 해야겠지만, 1차 완성 후 나의 느낌. '마음에 든다.'

사례집 성격상 사례의 정보와 이야기가 함께 들어가야하기에 고딕고딕한 문장과 에세이적인 문장을 합칠수 있어 그나마 숨을 좀 쉬었다. (논문은 고딕으로만 쭉 가야하니. 도무지 재미를 느끼지를 못하겠어..)


내 삶은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런것이 (또 앞으로도 그럴것이라는 강력한 예감) 의도하지 않았으나 엮어지는 것들이 있고, 그 엮어지는 것들을 따라가다보면 또 무언가가 엮어지고 열리는 것들이 있다.


(이 시점에서 또 장기하의 <그건 니생각이고>가 생각나네. 아 이 노래사랑. 그래 내사랑은 찐이라구.

"이 길이 내 길인 줄 아는게 아니라 그냥 길이 그냥 거기 있으니까 가는거야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게 아니라 가다보면 어찌어찌 내길이 되는거야.")

 

호스피스에 관련된 논문을 쓰고싶었으나 아는 맥들이 없어 대차게 까였었다. 그러니 일했던 곳을 똑똑똑 하는 수밖에. 국내체류난민에 대한 논문을 쓰면서 성인 난민들을 부지런히 만나고, 그들을 만나다보니 새로이 알게되는 스탭들이 있고. 마침 스탭이 담당하는 난민아동 음악수업에 음악교사가 없고. 그러니 내게 의뢰가 들어오고. 또 부지런히 난민아동들을 만나고 있는 중에 녹사평역 힐링음악회가 열리고. 숙대와 함께하는 음악회이다보니 이래저래 이러저러하여 아이들을 무대에 세울 기회가 생기고. 무대에 세우다보니 또 여러 교수님들이 무대를 보시게 되고. 그러다보니 사례집 제안도 들어오고... 흠 이건 무엇..?


숙대 음악치료 인턴과정을 거치는 중에 교내에서 교육청 주관으로 아동 및 청소년 음악치료를 진행한적이 있다. 물론 일개 대학원생이 치료사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내노라하는 교수님들이 치료를 담당하셨다. 그리고 교내에서 인턴을 하던 나는, 몇 교수님의 보조치료사로 함께했었다. 그러면서 만나게 된 아동들과 아동의 어머님들. 대기하면서 소파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다보면 (이야기의 주제는 당연히 아이들이기 때문에 대화속에서 내가 '엄마'라는 직책을 갖고 있는 것은 상당한 도움이 된다.) 뭐 소소히 친분이 생기기도 하고. 그 친분이 엮어져 글쓰기 모임이 만들어졌고. 고로 또 나는 어떠한 주제의 글을 또 써내려가야한다.(물론나는 글쓰기를 사랑한다. 그렇기에 선택했지.) 이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건 내가 자발적으로 이끌어간 것이 없다는것.


사람들은 내가 부지런하다 생각할수있으나 나는 어떠한 면에서 굉장히 게으르기에 내가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명명백백한 이유와 조건과 관심과 억압이 꼭 있어야만 한다. 하하. 자발적으로 시작한것들은 거의 내가 매우 사랑하는 것과 관련되었을게다


여튼 이렇게 가다보니 또 이렇게 되어버리는 이러한 나의 비자발적이고 수동적인 삶이 나는 왜이렇게 좋지?아마 두가지 이유에서일거다.


첫째,(논문 형식이 또 생각나는군) 누군가의 연락이 닿는것, 다시말해 누군가가 나를 찾는것은 그만큼 나의 삶의 순간들이 엉망이지는 않았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뭐 그것 또한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사람들에게로 한정되겠지만. 그래도 나의 자아존중감을 지켜주고 동시에 다른 사람을 소중히 생각할 수 있는 포인트.

둘째, 일들의 이야기들이 엮이고 또 엮여 또다른 이야기들이 생산되는것이 흥미롭기 때문에. 물론 과정들이 녹록지는 않다. 나는 정신이 없고 바쁘다. 그런데 그 일들이 싫지 않다. 힘들지만 재미있다. 많은 부분들이 내가 애정하는 "글쓰기"의 행위가 껴있기 때문인가보다.


분명 나는 글쓰기를 놓지 않을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기까지 꽤 많은 변명들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하지만. 그러기에 일단 <원지의 일기>를 장치삼지 않았나.

뭐 또 주저리하는것이 일기의 묘미이기에.

이어지는것들 연결되는것들 내 삶의 연결성 안에 톡톡히 자리하고 있는 '글'이라는 것.

오늘도 열심히 글쓰기를 해냈고 어제도 해냈고, 그 구성과 내용이 딱히 내가 완전히 추구하는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나는 비슷한 맥락으로 유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잘하고 있는거야!


글 속에 묻혀 산 며칠. 그리하여 남겨진 무언가가 있었던 며칠.

난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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