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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악치료사 이원지 Jun 12. 2023

양보할 걸 그랬어

_3. 재지 말고 마음이 말하는대로. 

'230612


어제 오후, 앞만 보며 걷다가 계단이 있는걸 몰랐더랬다.

발을 헛디뎌 왼쪽 발목이 45도정도 꺾이고 삐끗했다.

높은 굽도 아니었고, 감감한 밤도 아니었고, 딱히 접지를만한 요소가 마땅하지 않았는데도 차암.

몇분 앉아 쉬다가 다시 일어나 걸었다. 내일 아침이면 꽤 붓겠군 정도.


아침이 되었는데 생각만큼 그다지 많이 붓지는 않았다. 걸어보니 걸을만은 했다.

그래도 걷다보니 음. 이게 또 그렇게 걸을만하지는 않네.

하하. 어찌되었든 정형외과에 들르긴 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


학교 끝난 딸과 병원에 들러 이름을 대고 순서를 기다렸다.

사람이 많을 시간대인가. 생각보다 기다림이 꽤 오래 간다.

이원지님, 엑스레이 찍으실게요. 사진도 꼼꼼히 찍어주고 다시 나와 한참을 기다림으로.


내 옆에 한 분이 앉으셨다. 나이는 50대 중후반 정도. 복장을 보아하니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분인듯 했다.

그러려니 하고선 순서를 기다리는데, 이분, 간호사에게 얼마나 기다려야하는지 물으신다.

친절한 간호사님이 그야말로 친절히 답을 해주는데도 표정이 석연찮다.

왜 병원에선 으레 으름장을 놓는, 좀 더 씨-게 표현하여 흔히들 말하는 진상손님들 한둘쯤은 있지않은가.

그런 부류이려니 생각하고 딸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중.

옆을 슬쩍 보니 꽤나 아프신지 아픈 손을 다른 한쪽 손으로 받치고 계신다.

흠. 진짜 많이 아프신가.


마음 속에 살짝, 아주 사알짝 한가지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먼저 진료 보시라고 할까..

찰나 그 마음이 튀어나왔는데 여러 다른 다양한 생각들이 고 마음을 덮었다.

딸도 있고. 나도 많이 기다렸고. 딱히 뭐 그렇게 급해보이진 않으니깐. 괜찮어.

그 다양한 생각들도 실은 굉장히 빠르게 지나가버려서 초큼 올라왔던 '착한' 마음도 빠르게 잊었다.


이제 간호사 입술에서 내 이름이 불렸다. 이원지님, 진료실로 들어오실게요.

가서 진료를 받고. 압박용밴드로 발목 고정해주신다는 간호사님을 따라가는 찰나,

저-기에서 엑스레이 선생님의 소리가 들려온다.

"OO님, 골절이시거든요. 블라블라."


어이쿠. 골절이셨구나....


.

.


그냥 양보할걸.

살짝 고개를 내었던 "착한" 마음을 그냥 좀 놔둘걸.

내 아픔보다 훨씬 더 아팠을 사람의 아픔을 좀 볼걸.


오늘을 새겨놓고 다음에 또 유사한 상황이 오면

나 꼭 양보할게요. 미안합니다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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