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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악치료사 이원지 Jun 16. 2023

나의 할머니 이야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98년도즈음인가보다.


나는 나의 친할머니가 미웠다.

그것도 아주 많이 쎄-게 찐-하게 미웠다.




우리집은 반지하였고 여름비가 올때마다 내 방 베란다엔 물이 들어와 공벌레들이 굴러다녔다.

우리 식구는 아빠 엄마 남동생 나 할머니1 할머니2.

할머니1은 외할머니, 할머니2는 친할머니.

중풍 외할머니와 치매 초초기 친할머니는 좁은 한 방에 'ㄱ'자로 누워있었고 거의 매일 다투었다.

외할머니는 정 많은 욕쟁이 할머니였고, 친할머니는 친절한 속긁기쟁이였다.

(쉿. 사실 난. 외할머니파였다. 두 분의 다툼 중 잘못한 쪽은 꼭 친할머니만 같았다.)

100이면 104정도 맞지 않는 두분의 괴롬은 말할것도 없겠으나 같은 지붕 아래 사람들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 대체 우리 엄마는 어떤 삶을 살아냈던걸까.



외할머니는 인생의 끝무렵, 호스피스에서 몇달을 지내셨다.

삶이 아스라지기 직전이라는 연락을 받고 실컷 울었던 그 날.

친할머니가 최고로 많이 미웠던 날.


나도 그닥 철이 난 시절은 아니었지만, 외할머니 소식을 듣고도 밥을 내라는 친할머니가 참으로 야속했다.

어찌 이럴수 있나. 싸우긴 했어도 한방에서 같이 살았었잖아. 어떻게 이토록 멀쩡할 수가 있지 싶었다.

그때의 내 소심은 지금보다 더했기에 분노미움이 폭발하기 직전임을 차마 언어로 가져갈 수는 없었으나 끝내 무언가로 표현해내기에 이르렀으니 그것은 할머니 입에 감정을 잔뜩 실어 밥을 팍팍 떠넣는 것이었다.   


그당시 할머니가 앉아있었는지 누워있었는지는 가물하나 누군가가 식사를 챙겨 그 앞으로 가지고 가 먹여드려야 했었던건 분명히 기억난다. 그 누군가는 그 날 나였고. 할머니 외에는 아무도 없었던 집에서 나는 내 화를 숟가락 한가득 담아 할머니 입으로 휙 가져가고 가져왔다. 언제나 그랬듯 쫄보여서 우겨넣지는 못하였으나 오물오물 치아 없는 입으로 맛나게 받아먹는 할머니가 밉고 또 미웠다.



몇해전인가,

친할머니가 떠나신지 십수년이 지난 시점이었는데도 그때 그날 그 장면이 상세히 떠올랐다.

그리고 꽤 높은 고도와 밀도로 아리고 쓰린 감정이 찾아왔다.

그 때 그 날 나의 나쁜짓은 하늘과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는데, 영의 세계 속 무언가로 있을 할머니는 분명 이 비밀을 알아버렸을 거다.


회색빛 10대 중반을 보냈던 나와

훨씬 진한 회색의 40-50대를 보낸 엄마

그리고 어쩌면 그보다 더 진할지 모르는 퍽퍽한 세월을 살아낸 할머니

모두가 불쌍해지는 밤.


이 모든 날들이 기억 저편으로 아스라지고

할머니는 저기 저 높은 편안한 하늘에

엄마와 나는 초록빛과 조금 가까이 살아가고 있음을 믿는 지금.


할머니를 향한 마음, 미움과 사랑의 경중을 아직도 잘 모르겠기에 어떻게 글을 맺어야할지.

누군가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애도의 마음일 수도 있다고.

내 마음의 맺음도 글의 맺음도 어스름하지만 그냥 이렇게.

할머니 언젠가 어디선가 나쁘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 꼭 다시 만나요.

내 마음 꼭 전하고 싶어요.

그때 참.. 미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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