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렇게 아이를 키우고 싶었어1.

_국내체류난민과 함께.

적어도 길 가다 피부색 다른 사람을 만나면 무서워 도망하진 않겠오


적어도 길 가다 피부색 다른 사람을 만나면 무서워 도망하진 않겠지.


왜 그렇지 않은가.

결혼 전, 이런저런 자녀 양육에 대한 로망들 한두가지씩 갖는.


20대 중반, 신나게 연애하던 시절들에도 나는 여전히 비정부기구(Non Goverment Organization)에서 일하고 있었고, 하여 자녀양육에 대한 그림 또한 난민을 비롯한 사회 소외계층을 빼놓고선 생각키 어려웠다. 내가 가는 곳, 만나는 사람들, 다시 말해 나의 생활 반경과 삶의 그림이 그들과 함께하여, 그들과의 만남과 연대가 자연스레 자녀들에게 이어지기를 바랐다. 말 그대로 "자연스레". 자연스럽게 삶으로 스며드는 그 모습들. 그것은 내가 정말 그런 삶을 살때에만 자녀들에게 적셔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이번 난민분들과의 음악치료 세션은 머릿속 나만의 장면들이 자연스레 이루어진 현장이었음에 내 안에 두터이 차오르는 기쁨이 있었다.


맨 처음, 첫째딸이 피부색 다른 친구를 만난건 아장이 세 살때였다.

동두천 살고 있는 난민 친구에게 옷가지며 기타 생필품, 육아용품들을 한아름 들고 찾아가 반갑게 만났던 기억.

(잠시 다른 이야기. 출산과 동시에 직장 일은 스탑되었으나, 결혼임신출산을 겪은 나는, 동일하게 결혼임신출산을 겪고 있는 난민여성들과 더더 찌인한 찐친이 될 수 있었다. 동병상련...은 아니지만서도.) 내가 그 친구와 친구가 된 것처럼 나의 딸과 그 친구의 딸도 친구가 되었다. 뒤뚱 걷는 3세때 말이다. 그 역사적인 만남도 뒤져보면 어디엔가 사진이 있을텐데.


그래, 이런 그림이다.

그토록 강조하는 단어. 자연스러움.

그것은 음악과 악기가 함께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아이 앞에서 상냥하게 말을 건네는 것은 만국공통인지라 상냥한 말투로 먼저 인사해주는 난민분들에게 자연스레 다가가는데다, 소박스럽고 한번 건드려보고픈 악기가 눈앞에 있지 않은가. 세션이 시작되기 전, 혹은 끝난 후, 그저 같이 연주하고 노는거다. 그냥 재미있고 즐겁게.

아이는 어리다는 이유로 대체로 러블리한 것이니 난민분들은 웃게 되고, 아이들은 난민분들과 악기연주하며 노는 것이고. 그러면서 함께 즐기는 상냥한 친구로 받아들이게 되는것.


무뚝뚝한 성인이 아이들과 함께할땐, 신기하게도 관계의 온도와 밀도가 올라가는 것을 종종 발견한다. 과묵한 내담자라면, 그와 치료사간의 보이지 않는 약간의 어색함을 깨뜨려주기까지.


내담자와 치료사, 아이들 삼자에게 다각도로 유익하니 이것이 기어이 두 아이 짊어지고 악기 보따리 메어지고 치료 세션을 함께 가는 이유다.


앙O씨가 얼마나 우리 두 딸들과 삼촌처럼 잘 놀아주었는지. 아직도 가끔 아인이는 앙O삼촌 앓는소리를.


난민분들에게 한국에서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는 종종 마음과 정신을 꾸욱 매어야 하는데, 한국인에 대한 여러 좋지 않은 묘사들이 가끔씩 등장하기 때문. 충분히 이해 가능하나 은근히 올라오는 무언가 사이에서 나부터 잘 균형을 잡고, 잘 경청하며, 다시 설명해드리기도.

한국인에게 길을 물어보거나, 혹은 그저 서있었을뿐인데도 도망가는 한국인의 뒷모습을 많이 보아버린 앙O씨가 우리 아이들과 놀아주며 내게 한 말.

"They won't run away when they see foreigners."

나의 의역.

"적어도 너의 딸들은 나중에 커서 피부색 다른 사람들을 만났을 때 도망가지는 않을거야."


그게 바로 내가 바라는 바.

두렴과 섦이 서려있는 누군가의 눈빛을 알아보고, 그들에게 기꺼웁게 다가가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렇게 아이들이 성장하고 살아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게 주어질 또 다른 음악치료 시간에도 두 아이 앉혀놓고 음악 들으며 운전대 잡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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