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렇게 아이를 키우고 싶었어2.

_발달장애 아동 및 청소년과.

왠지 잘 키울것만 같'았'다.

나긋나긋 다정다감 의인화가 바로 이원지 아니'었던'가.

자신이 만만했다.

아이가 내 눈앞에 놓여지기 전까지만.


응 그래. 난 엄마라는 영예로운 직책에 그리 적합하지는 않나보아.

처음엔 이와같은 객관적 사실들에 마음 스크래치들이 적지 않았으나

육아의 시간이 어느 정도 지속되니 객관적으로 객관화되다못해 조금 무디어지기까지.

합리적 의심에서 인정까지 시간이 다소 걸렸을 뿐.

그래도 저래도 그나마 저나마 크게 변치 않는 하나의 생각이 있다면,

"내 삶의 결에서 녹아지는 문화들 안에 아이들이 놓여지면 좋겠다"는 것 정도.


조금 더 소박하게 표현해 보자면,

엄마인 내가 국내 체류 난민들을 만나러 간다면, 그저 아이들 데리고 가는 것.

엄마인 내가 발달 장애 아동들을 만나러 간다면, 그저 아이들 데리고 가는 것.

내가 프로그램을 진행해야한다면, 밖에서 이래저래 놀며 엄마를 기다리다 자연스레 오다가다 그네들과 대화 몇마디라도 주고 받는 것 정도.


물론 대롱대롱 아이들 달고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으나, 그녀들이 커서 이 모양들을 기억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들의 삶에 썩 의미 있는 경험으로 자리할 수 있다면. 엄마는 기꺼이 투싼 뒷자리를 내어준다. :) (사실 언제까지 따라올는지도 모를 일.)



숙명여대 음악치료대학원 교내 인턴으로 1년여간 일하며, 발달장애 아동 청소년을 적지 않게 만났다. 지적장애,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는 친구들. 나는 의도치 않게 발달장애 아동 청소년 합창단의 지휘자가 되어 있었고, 합창단의 수와 소리가 적고 작다는 이유와 교수님의 권유로, 나와 한집 사는 그 어린이들도 가끔 치러지는 합창공연에 함께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의지도 생각도 없었으나 이런저런 사유들이 결국 1606호 어린이들에겐 큰 배움이 된 셈이다.


이번에도 꽤나 크게 치러진 숙명여대 음악치료대학원 25주년 기념 행사에 합창단 친구들이 서게 되었고 비슷한 이유로 감일동 어린이들도 함께 참석할 수 있었다. 명색이 합창단인데, 어디 연습 없이 설 수 있나. 화요일마다 센터에서 열리는 합창시간에도 들어가 연습해야지. 연습은 뭐 그냥 하나, 오른 옆, 왼 옆에 발달장애 언니오빠들 함께 서지. 어찌 이런 귀하고 소중한 경험이 선물처럼 와 닿았는지. 처음 언니 오빠들의 특성과 행동들을 마주했을 땐 흠칫 놀람이 있었으나, 근 1년간의 간헐적 마주침으로 어느 정도의 경험치가 쌓여 이젠 그녀들 마음에서 그네들과 뭉근히 친근해졌음이 보여진다.



키워지는 가정 내 문화라는게 참으로 중요하여서 무엇을 보고 경험하며 자라나느냐가 속일래야 속일 수 없는 매서운 포인트인데, 어쩜 음식 잘하는 엄마 밑에서 요리 잘하는 아들딸들이 나오느냔 말이다. 과연 그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음식에게 끌려다니며 기껍고 기껍게 상을 차렸을까. 아니라고 본다. 아마도 요리를 하는 전 과정이 그 엄마에게도 흥미론 놀이이기에 장을 보면서부터, 집에 와서 재료 손질을 하면서, 또 썰고 볶고 넣고 끓이는 순간들에서 대대소소한 대화들과 스킬 시전과 비법 전수들이 이루어졌을 터이다. 거기다 우린 '매일' 적어도 두 번 이상은 끼니를 맞는다. '먹는다'는 행복한 행위를 위해 매일 요리를 하고. 이 매일들이 모이고 쌓여 문화와 그 아이를 만든다.


그와 꼭 같은 측면에서 나는 우리집 어린이들을 그네들과 마주하게 하고 싶다. 그래서 너와 내가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의 틀을 덧대주고 싶다.

다행이고 고마운것은 그녀들이 아직 9세 7세이기에 "아 내가 비장애인이니까, 아 내가 정상이니까, 아 내가 다르니까 이들을 도와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 폴짝풀쩍 뛰어다니는 오빠(상동행동)를 가만-히 지켜보고, 내 형형색색 머리끈을 계속 만지고 만지는 오빠에게(시각적 자극으로 인해-) 머리카락을 내어주는 것은 돕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그저 눈과 맘에 담고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일 뿐이다. 돕는다는 표현 아래 숨어있는, 내가 너보다는 이모양 저모양으로 나은 편에 속해있기에 무언가를 해줄 수 있어. 라는 그 개념이 나는 뼈에 사무치도록 싫다. 도움의 행위가 끝났을 때 의식인지 무의식인지조차 모호한 그 어딘가에서 첸체하는 의로움의 음흉한 미소에 한두번 속은게 아니기 때문. 덕분에 나는 도우러 갔다가 오히려 도움 당하고 오는 적이 허다했다. 돕는 게 아니다. 그저 옆에 함께하는거지.


이 모든 순간들이 무언가 특별하게 다른것으로 여겨지지 않고, '자연스럽게'(_내가 참 좋아하는 단어) 스르륵 눈꽃과 이슬이 내려앉듯 그 아이의 내면에 무겁지 않게 자리하면 좋겠다. 그러려면 때는 어려야겠지. 아는 것이 많아지고, 눈에 보여지는 것에 대한 판별과 판단이 어렵지 않을때는... 이미 늦었을지도.


말이 길어졌다. 쨌든, 공연은 예쁘게 잘 끝났다. 갖춰 입은 옷과 보타이, 간간히 새고 튀는 소리가 들리나 그것조차 아름답게 믹스되는 예쁜 공연으로 내내 기억남겠지. 함께 살아가는 삶에서 여러모양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는 아이들로 자라나길 바라며...



(_아쉽지만 개인정보가 보호되어야하기에, 사진은 마음으로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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