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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악치료사 이원지 Aug 22. 2023

시험이 끝난 뒤.

한껏 몰입한 후의 바람직한 자세에 대하여.

'230822


일단, 커피다.

커피를 마시러 어딘가에 혼자 간다는 것은 그만큼 내게 시간이 있다는 것이고 다시말해 지금 여유롭다는 뜻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래서 여기 와 앉아있다. 아우. 행복해라.


지난주 토요일에 음악치료 자격시험을 치렀다.

이 시험을 치르기 위해 대학원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지려면 인턴 몇시간, 실습 몇시간(다해서 1040시간인가..) 어마어마한 시간이 기재되어야하고, 그 지난한 과정을 나는 말그대로 지난하게 지,랄맞은 난,관을 뚫고 거쳐왔다. 또, 이 시험은 나의 대학원 5학기를 총망라한 지식들이 출제되는 시험이기에, 그리고 나는 내내 성적 우수장학금을 타왔으며, 4.5만점에 4.49, 4.3만점에 4.28, 100만점에 99.7점을 맞아낸 위인으로써! 못보면 굉장히 X팔리는 상황이 연출되기에, 나는 시험을 잘 치러야했다.

잘 치러야내야하는 사람인데, 도대체 시간이 주어져야지. 아이들은 계속해서 방학이라 세끼 줄곧 차려드려야하고,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는건 그다음날 컨디션 제로를 향한 최선의 길임을 알아차렸기에 할 수 없었으며,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교회 수련회다 뭐다 행사가 줄줄이 있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8월 15일 빨간날과 바로 다음날 아이들 개학후부터였다. 16일은 이래저래 수아 병원 스케쥴이 있어 땡. 고로 집중공부시간 화, 목, 금. 3일.


화 목 금. 농도 깊은 몰입이 주어진 시간이었다. 시험이라는 것이 있어야만 내가 이렇게 몰입을 하는구나 싶어 씁쓸하긴 하지만, 5학기동안의 음악치료이론들에 대해 촤라락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음, 뭐랄까. 뇌 속에 그동안 공부하고 실습했던 조각 스냅스들이 연결되는 기분이랄까. 바로 이틀 뒤 시험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팩트만 뺀다면, 몰입의 그 시간들, 나쁘지 않았다. 몸은 피곤했으나 음, 꽤... 좋았다.


잠을 설친 토요일 이른 아침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광화문으로. 오랜만에 지하철도 타고, 종로 광화문 아침거리를 활기차게 걸으니 그또한 좋았다. 사람이 거의 없는 이른 시간, 대형 카페에 앉아 냠냠 맛나게 먹었던 랩샌드위치와 따뜻한 아메리카노 맛도 참 좋았다. 비장하게 시험장에 걸어들어가 비장하게 백문제를 풀고 나오니 그마저도 쌉싸르하면서 시원-한것이 참 좋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을 거치면서까지, 자꾸 시험 문제가 생각나는거다. 앗, 이거 틀린것같은데? 아, 이거 틀렸다... 아. 윽. 맞다. 그거 아니었는데... 하는 그 어떠한 찌질함들이 솟아났다. 그리고 나야 뭐 그러한 감정마저도 빨리 사그라지는 편이니 그것도 패스.


하여 화요일 오늘아침이 되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갔고, 틀린듯한 시험문제도 이제 많이 기억나지 않고, 아무런 스케줄도 없는 그런 여유롭고 기분좋은 오전 말이다. 하하하. 누굴 만나지도 않을테지만 이쁘게 샤워 챡 하고, 단정하게 차려입고 나와서는 검색해놓은 카페로 운전대를 잡고 가다가, 어맛, 카페 바로 옆에 내가 좋아하는 막국수집이 있네. 그렇다면... 먹어야지. 아암. 충동적으로 메밀막국수 집에 들어갔다. 아니, 충동적이지 않을수도 있다. 나는 막국수를 아주 오래전부터 먹고 싶었으니깐.. 그렇다면 철저히 계획적인것일수도..아암.

비빔막국수를 시켜놓고는 그렇게나 행복했다. 그리고 비빔막국수 등장. 한입을 뜨기 전의 행복이란, 모든 것이 지금 완전한 때의 그 기분이란 아무나 잘 모를걸. 후루룩. 면발이 조금 풀어진것 빼고는 완벽한 맛이다. 세지 않고 슴슴하다. 과연 맛집이로구나. 내가 평소에 빨리 밥을 먹는 편은 아닌데, 어머. 조금 지나니 거의 다먹었다. 분명 양이 많은 집이라고 들었는데. 내가 평소에 양이 많은 편은 아닌데.... 흠. 아닌가. 모르겠다. 맛나게 먹고 하남페이로 결제하니 더 기분좋아. 아주 배가 불러서는 바로 옆에 있는 카페로 들어와 카페라떼에 마들렌 하나 시켜놓고는 또 나오자마자 우걱우걱 먹는다. 음.. 이맛이구나 맛난다 맛나.


무언가 제대로 몰입을 한 후에 한껏 여유롬에 거하는 일, 참.. 맛있지 않은가.

한껏 몰입 후에도 쉴 수 없는 누군가가 있음에 미안하고, 이러한 여유롬을 그야말로 '부릴'수 있는 여유를 늘 선물해주는 홍천에게 고맙고. 그렇게 오늘의 시간이 흘러감에 감사 또 감사.

이제 이런 여유롬은 내일로 끝. 난 다시 이번주 목요일을 기점으로 GIM 레벨 2를 향해 몰입하러 고.


덧. 어떤 한가지에 몰입할 때, 나의 사랑하는 글쓰기는 뒤로 물러나는 짙은 경향성에 대하여. 이제 좀 타파해야지 않을까. 그다지 이쁜 글이 아니더라도, 그다지 쓸만한 뭔가가 없어도, 기록하자. 원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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